유신헌법 앞세운 ‘체육관 대통령’의 탄생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도무지 환호할 수 없었어. 야당의 젊은 도전자 김대중에 맞서서 별의별 짓을 다 해야 했기 때문이지. 온갖 관권을 동원하고 막대한 돈을 뿌린 건 새로울 것도 없었다.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는 1971년 국가 예산인 5242억원의 10%가 넘는 600억원 내지 7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선거자금을 썼다는 얘기를 당시 여당 고위층으로부터 들었다(〈프레시안〉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영화 〈킹메이커〉를 보면 김운범(김대중) 후보의 정치적 모사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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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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