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원 인증된 계정 ·
2023/08/20

@몬스 그렇죠. 당시로서는 조선인 비행사의 첫 시험비행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정밀하게 계산 못한 면도 있습니다. 총독부 고위직 관료, 일본인 정치인, 재조 일본인 사업가 중에서도 안창남 시범비행에 후원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1922년 시점의 묘한 특수국면이라고 봐야겠죠. 3.1운동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고, 1930년대 중반 중일전쟁 시작된 후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데. 1920년대는 바로 그 사이 시기에 ‘문화통치’를 내걸고 있었던 때니까요. 안창남 비행이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게 될지 정확하게 몰랐다고 봐야죠. 

강부원 인증된 계정 ·
2023/08/19

@김현우 이응호와 서왈보가 안창남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자료와 기록이 많이 공개돼 그나마 알려지는 추세입니다. 누가 가장 먼저냐를 구분하는 것보다 그 무렵 조선인 비행사들의 꿈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어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찬 인증된 계정 ·
2023/08/19

비행에 낭만이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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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엄복동도 끼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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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전차랑 같이 묶으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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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1

이응호와 서왈보.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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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부원아! 잘 봤다. 

강부원 인증된 계정 ·
2023/08/21

@aggremon_f 이런 이야기 많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
·
2023/08/21

이런 이야기들 너무 좋아요. 

몬스 ·
2023/08/20

상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후원까지 했다니 하나의 사건에 담긴 서로 다른 시각들에 당시 시대의 역동감이 느껴집니다. 설명을 듣고 종로 비행사진을 보니 더 의미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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