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윤 인증된 계정 ·
2024/03/26

@popo 

글을 쓸 때에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요. 
내가 정말로 느끼고 생각한 것인가? 
그리고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에는 누군가는 글로 써야하는 중요한 일들, 글로 쓰면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만, 그걸 내가 진실로 느꼈는지는 별개인 것 같아요. 아무리 시시하거나 사소한 이야기라도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를 질문해보는 거에요. 소로가 <월든>에서 제발 너 자신의 이야기를 써라고 했던 부분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여기서 두번째 질문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그걸 누군가에게 듣는 것도 아니고 읽으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건 나의 이야기를 벗어나야 하는 거에요. 모든 사람이 다 읽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에는 어떻게 보편성에 연결시킬 것이냐를 생각해본다는 거죠. 

기사를 쓰는 것과 제가 쓰는 글은 겉으로보면 테크닉적으로는 완전히 다르지만 질문은 비슷한 것 같아요. 나에게 재미있는 내용인가? 이게 왜 중요한가? 논문도 마찬가지에요.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쓰는 건 형식에 맞춰서 저절로 나아가게 되죠. 

기자생활은 즐거웠어요. 4년 남짓 짧은 기간이고, 취재부서에 있지도 않았으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요. 영미매체들의 분석 탐사기사들은 발굴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각 나라 독자들의 관심사와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파고들어야만 했으니, 저는 너무 신났죠. 게다가 한국에서 조직 생활은 어떠한지도 다양하게 배웠어요. 신문사 조직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직업군 사람들과 접하게 되니까요. 그냥 접하는 게 아니라, 기자라는 입장에서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서요.    

박혜윤 인증된 계정 ·
2024/03/26

 @anne0328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그 이유가 스스로를 관찰하게 됐다니, 딱 저의 글쓰기 목표가 맞은 것 같아서 더 기뻐요. ^^  

부정적인 감정에 대하여: 

첫번째 단계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음껏 느껴요. 미운 사람에 대해서는 마구마구 욕하고, 질투나 불안도 '아, 미칠 것 같아.' 이러면서... 제가 평범한 속좁은 인간이라서 그런 거겠지만, 이렇게 마음놓고 성질을 부리는 게 신나고 후련하기도해요. 대신, 단 하나의 원칙이 있어요. 이 기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타인과의 접촉을 완벽하게 끊고 혼자서만... 이 시기의 감정에서 나온 내 자신의 생각들과 행동들을 저는 하나도 믿지 않거든요. 이 원칙을 잊지 않기 위해 이미지가 필요한데 그게 '사이렌'이에요. 오디세이가 지나는 항해 길에, 사이렌이 노래를 부르면 뱃사람들이 다 물에 뛰어들어서 죽었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오디세이는 미리 자신의 온 몸을 묶어버렸어요. 너무도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방법밖에 없는 거에요. 사이렌의 노래를 듣듯이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다 느끼고 경험하지만, 내 몸이 꽁꽁 묶여있다는 걸 절대 잊지 않아요.

그러고 나면 두번째 단계로 진짜 생각을 해봐요. 잘 숙고된 나의 감정은 나에게 딱 맞는 행동 방향을 가르킨다고 믿어요. 누군가가 싫다면, 그 사람은 내게 독과 같은 존재라 멀리해야 하는 거죠. 화가나서 후회할 만한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차근차근 무리없이 멀어지는 행동을 생각해보는 거에요. 하지만 반대 방향을 가르치기도 하죠. 가령 자식도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싫어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 무언가가 내가 외면하고 싶은 어떤 진실을 가르키는 거죠. 그것을 대면하는 행동들에 대해 생각해봐요. 주로 나의 단점이나 모자람 같은 건데, 이런 깨달음은 죄책감이나 자학이랑 다르게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같은 거라 내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죠. 

이 두 가지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해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오래 생각해보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언제나 간직해둬요. 상관 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도 답을 얻기도 해요. 영원히 답이 없는 것들도 많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정적 감정들이 도드라진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감해요. 저는 그게 좋아요. 나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더 분명해지고 빨라졌다는 거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데이터가 그만큼 많이 쌓인 거죠. 역시나 이번에도 '사이렌'의 원칙... 나이는 나 혼자 먹은 거니까, 타인에게 말은 하지 말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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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박혜윤 작가님 꾸준히 집필해주셔서 독자로서 무지 반갑습니다. 

작가님의 글쓰기 원칙 같은 게 있나요? 
기자로서 일할 때와 작가로서 글쓰기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기자 생활은 적성에 맞으셨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신작도 읽어 볼게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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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안녕하세요^^
신간은 북토크 덕분에 미리 읽었지만 또 읽고 있지요
작가님 책을 참 좋아합니다
어디가 왜 좋은건지 읽고 또 읽고요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좀 더 관찰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게 참 기쁜 일입니댜

무엇이든 물어보라 하셔서 용기내봅니다
작가님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왠지 따라해볼만한 좋은 방법이 있으실거 같아요
나이가 들면 편안하고 의젓해질줄 알았는데
불안함 질투심 불편한마음 이런 감정들이
더 도드라지는걸 느껴요

다시 한번 읽고 또 읽을 책을 그런 작가님을
만난 행운이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박혜윤 인증된 계정 ·
2024/03/25

@제이미로그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한인들이 없는 시골에서 생활해오고 있어요. 미국이라도 도심이나 도시근교에서 살 때는 한국에서 살 때와 큰 차이를 못느꼈어요. 대학은 당연히 나와야 하고, 어느 정도 벌어서 어떤 정도의 집에 살아야 하고... 그런데 시골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요. 더 세게 말하자면, 무지하게 희한한 사람들이 천지에요. 저도 그래서 제멋대로 살아도 될 것 같은 용기같은 게 생긴달까... 그런데 이게 전적으로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매 순간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할 일이 무수하거든요. 그리고 제멋대로 사는 게 대체로는 경쟁력이 없는 쪽으로 마음이 가기도 하고요. 

가장 좋은 예가 코로나 시절 마스크 착용... 참혹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에도 시골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살짝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어요. 정부 지침 지키지도 않아요. 그래서 시골사람들을 엄청 욕하고 미국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중국의 락다운을 보니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생활의 즐거움도 괴로움도 다 다양성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건, 환경오염이건, 원자폭탄이건, 인류가 어떤 식으로든 멸망하는 미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는 동안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 그리고 영화 <돈룩업>에서 지구가 멸망하는 와중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 장면에 공감해요. 배가 침몰하지 않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덕분에 마지막 연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고, 매일 생각없이 먹었을 식사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을 잊고 극치의 행복한 한끼가 됐을 거에요. 당장 망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나의 오감, 나의 사람, 나의 시간을 더 의식적으로 느끼려고 해요.  

이건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에요. 영화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반응들을 보이죠. 돈을 더 벌 수도 있고, 지구를 탈출해서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도 있고... 그렇게 활용방법은 각자 자신의 성향에 맞는 걸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제이미로그 ·
2024/03/25

안녕하세요 작가님 
인공지능 시대에 여러 의견들이 공론화 되고 있는 시대에 오히려 여백이 있는 삶을 추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비해 속도나 양은 느리고 적을 지라도 인공지능에는 없는 여유와 감성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그러면, 그 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논외로 미국 생활하시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에피소드와 반대로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박혜윤 인증된 계정 ·
2024/03/25

@그렇구나그렇구나 일단 제가 생각하는 여백이라는 것 부터요. 여백은 추구해야할 좋은 게 아니에요. 특히나 요새는 무언가를 이루는 열정적인 삶의 태도가 중요한 시절이니까요. 당연하 이야기지만,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건 부럽고 멋진 일이에요. 제가 여백을 많이 확보해서 나온 결과는 대부분 게으른 거거든요. ^^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시간들이요. 나태하고 게으른 건데, 왜 이걸 좋아하냐면, 그래야 무언가가 내 것이라는 확실한 느낌같은 게 들어요. 단 한 명의 타인, 한 문장의 글, 하나의 영어 단어를 목적없이 오래오래 음미할 때에만 느껴지는 쾌감같은 게 있거든요.

이걸 어떻게 하느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상상해요. 영화에 나오는 청부살인업자처럼... 일상에서 하고 있는 일,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제거할 때 말이죠. 이건 순간에 결판이 나요. 순간의 선택이니까요. 아주 예전인데, 전기밥솥을 버리던 순간이었어요. 솥밥의 세계로 가는 건데, 너무 괴로운 거에요. 전기밥솥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공포심이 올라오는 거에요. 이렇게 쓰면 웃기지만, 딱 그 순간에는 정말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아요. 밥솥을 내려놓고, 노려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밥솥을 덥석 끌어안아 버렸어요. 스스로 너무 웃겨하다가 냉혹하기로 했죠. '이 순간 나는 이걸 버린다. 그리고 후회가 되면 나는 냉혹하게 50만원을 써서 새로 사버릴 것이다.' 

아이에게 도시락 싸주는 가사일도 그렇게 냉혹하게 없앴어요. 아이에게 냉혹한 게 아니에요. 아이에게 도시락 싸는 메뉴, 도시락 설거지하는 법, 포장방법 등을 하나하나 가르치는 동안 아이는 신나했고, 실천을 하면서부터는 가족들이 다 자는 동안 스스로 도시락을 챙기는 시간의 혼자만의 고요함을 좋아하고 자랑스럽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그걸 내가 하는 일에서 잘라내는 건 정말 냉혹한 결심이 필요했죠. 아이가 엄마가 아침에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눈치를 조금이라도 줬다면 쉬워졌을 거에요. 엄마로서 꼭 해줘야 하는 일이구나 했으면 선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 스스로 엄마라는 사람으로서 괜찮은건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어려웠지만, 결국 냉혹하게 여백을 택했어요.      

그러니까, 저의 대답은 '굳이 여백을 만들 필요는 없다. 바쁘게 사는 건 좋은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여백을 만들겠다고 작정했다면 이유나 당위가 아니라 순간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훌쩍 뛰어넘는 기분처럼 말이죠.

참... 팬이라고 해주시는 건 언제나 설레요. 한 평생, "넌 좀 이상해," 그런 말 많이 들어서, "음. 어쩔수 없지"라고 체념했었는데, 덕분에 책을 한 권씩 더 낼 수 있지 뭐에요. 근데 알고보니 다들 그런 말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였던 거에요.. 그래도 신기한 기분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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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작가님이 쓴 책들 다 읽었고 팬이에요. 거의 매년 책 쓰시잖아요, 그런데 본인은 게으르다 하시고. 매일 생업, 육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일상의 여백을 가능한 넓게 만든다' 이걸 어떻게 시도해 볼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