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어린이날 어른들도 꼭꼭 숨은 동심(童心) 꺼내보는 사진 전시회

이준영
이준영 · 박사과정 학생
2024/05/03
그때 우리는 순진무구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살았던 시대를 실제 이상으로 미화한다지만 스마트폰도 SNS도 모르고 살았던 그때 우리는 친구 아버지 직업이 뭔지, 주공아파트가 뭔지, 그랜저가 얼마인지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컸다.


여름날 개구리 노랫소리 들렸던 도시 속 농촌 내 고향
달고나 무늬랑 똑같은 그림, 여자친구가 내 팔뚝에 유성매직으로 그려주면 웃기만 했던 어린 시절


나의 살던 고향은 한 여름 꽥꽥 질러대는 개구리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도시 속 농촌이었습니다. 집에 에어컨 없던 시절, 무더위를 식히려 창문을 열어두면 논두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가끔은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초등학교 앞 사육장에 사는 도도한 존재, 공작새가 개구리 노랫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양 뜬금없이 부딪쳐 불협화음을 내는 심벌즈처럼 심술궂게 일성(一聲)을 내질렀습니다. 
베란다 앞으로는 차가 다닐 만한 큰 도로도 없었고 세대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아담한 빌라에서도 지선도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호실에 살았던 터라, 공작새의 고함은 고요한 밤의 정적을 갈라놓는 고성(高聲)과 같았고, 화려한 몸뚱이에서 나오는 그 돼지 멱따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창문을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논두렁이가 펼쳐지는 그곳을 산드래미라고 불렀고, 우리 집은 도시와 산드래미가 만나는 접점에 놓였습니다.


우리 집 벽산빌리지가 건설되기 전, 그 자리는 천막을 쳐놓고 달고나를 굽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방방'이라 불렸던 트램펄린을 설치해 놓고 아이들 상대로 장사판을 벌였던 공터였습니다. 그곳에는 동전을 넣으면 가는 미니 자동차와 오락기가 있어서 아이들에겐 작은 놀이동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용돈이 생기면 코 묻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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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에 원고를 납품하는 프리랜서 지식 노동자입니다. 러시아•시리아•튀르키예•인도네시아 등 풍부한 해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국제정세•경제•사회문화•외국어•스포츠 등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출판 번역가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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