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남과 여>의 슬픈 속사정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4/16
‘남과 여’ 이 영화의 제목은 언뜻 로맨틱하게 들린다. 알고 보면 꽤 슬프다. 성별을 앞세운 제목은 이름의 정체성을 부러 가리고 있어 기억이 희미해지는 느낌처럼 안타깝다. 또한, 조사 ‘과’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어 있어 맺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2016)는 멜로영화이되 극 중 주인공 남녀의 헤어짐을 전제하는 탓에 애소의 인상을 남긴다. 

남자(공유)가 있다. 여자(전도연)도 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첫 만남에서 몸을 튼다. 속을 맞춘 사이지만, 이름까지는 모른다. 남자와 여자 모두 마음으로도 호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이름을 밝힐까, 말까, 머뭇거린다.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핀란드. 남자와 여자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진흙처럼 검게 젖은 심신을 숨기려 피신 중이다. 하얀 눈 아래 덮으려는 남자와 여자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들은 한국에서 꽤 잘나간다. 남자는 건축가, 여자는 의상 디자이너다. 각자 결혼까지 해 아이까지 있는 이들은 전혀 부족할 게 없어 보인다. 여자의 선배 왈, “너 잘 살잖아”

실상은 안 그렇다. 여자의 아들은 자폐 증세가 있는 데다 의사 남편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의 사정 역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조울증 아내를 돌보랴, 그 때문에 불안 증세를 보이는 딸아이를 달래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하도 뒷얘기가 많은 한국에서 사회적 시선도 신경 써야 하니 핀란드는 좋은 피신처였을 테다. 그곳에서 만난 쓸쓸한 ‘남과 여’라니. 보는 눈(目)도 없겠다, 감상적인 눈() 풍경까지 더해지니 이들의 몸과 마음은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그런데 이 섹스, 쾌락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몸을 통하는 장소는 사우나다. 남자와 여자는 아이들의 캠프 여행을 배웅하러 갔다가 눈이 심하게 와 차를 몰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호텔 방을 각자 잡고 하루를 보낸 이들은 다음 날 아침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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