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일본, 아베 이후의 일본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정치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한국 국민에게는 가깝고도 먼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역사 인식부터 외교, 안보 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였고, 그의 재임시기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일본에서 최장기간 재임한 총리였고, 정치적 영향력은 재임 이후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최종 업데이트
2022/08/18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붙는 대상은 일본이라는 나라뿐만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정치인 아베 신조 전 총리 역시 한국 국민에게는 가깝고도 먼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역사 인식부터 외교, 안보 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였고, 그의 재임시기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일본에서 최장기간 재임한 총리였고, 정치적 영향력은 재임 이후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좋든 싫든 가깝든 멀든, 그가 존재하던 시기 일본과 그가 사라진 시대의 일본을 꼼꼼히 짚어 봐야 할 이유다.
국내외 전문가가 쓴 글 네 편을 모았다. 정치와 경제, 국제안보관계 등 다양한 입장에서 그를 되짚고 그의 사후를 예상했다. 아베라는 복잡다단한 인물을 모두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글마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언뜻 객관적인 서술 같아 보이는 부분도, 역사적, 지리적으로 얽혀 있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읽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진보센터의 토바이어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그 같은 아베의 정신적 뿌리를 그가 존경하던 메이지시대 정치가들에게서 찾는다. 미국 입장에서는 ‘강력한 일본’을 추구했던 아베의 정치적 입장에서 근대국가 설립을 염원했던 메이지 시대 정치인을 찾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그 메이지 시대 정치인 다수가 정한론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던 역사 인식의 이면에는,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그의 정치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역사 인식부터 외교, 안보 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였고, 그의 재임시기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일본에서 최장기간 재임한 총리였고, 정치적 영향력은 재임 이후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좋든 싫든 가깝든 멀든, 그가 존재하던 시기 일본과 그가 사라진 시대의 일본을 꼼꼼히 짚어 봐야 할 이유다.
국내외 전문가가 쓴 글 네 편을 모았다. 정치와 경제, 국제안보관계 등 다양한 입장에서 그를 되짚고 그의 사후를 예상했다. 아베라는 복잡다단한 인물을 모두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글마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언뜻 객관적인 서술 같아 보이는 부분도, 역사적, 지리적으로 얽혀 있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읽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진보센터의 토바이어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그 같은 아베의 정신적 뿌리를 그가 존경하던 메이지시대 정치가들에게서 찾는다. 미국 입장에서는 ‘강력한 일본’을 추구했던 아베의 정치적 입장에서 근대국가 설립을 염원했던 메이지 시대 정치인을 찾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그 메이지 시대 정치인 다수가 정한론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던 역사 인식의 이면에는,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그의 정치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1.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정치는 다시 힘을 받고 있다(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아베 전 총리는 사라졌지만, 그의 정치는 아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길게는 메이지유신과 정한론의 원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배경 덕분에 그는 대표적 우익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한국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일본 국내로 한정해 본다면 야당을 압박하고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며 오랫동안 정국을 끌고 온 능란한 정치가였고, 일본의 전후체제 극복을 추구하며 동시에 대미동맹 중심으로 새로운 안보 전략을 구상한 고집 센 외교가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이력은 정치적 유산으로 남아 한동안 일본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사라졌지만, 그의 정치는 아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길게는 메이지유신과 정한론의 원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배경 덕분에 그는 대표적 우익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한국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일본 국내로 한정해 본다면 야당을 압박하고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며 오랫동안 정국을 끌고 온 능란한 정치가였고, 일본의 전후체제 극복을 추구하며 동시에 대미동맹 중심으로 새로운 안보 전략을 구상한 고집 센 외교가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이력은 정치적 유산으로 남아 한동안 일본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 하이브리드형 아베노믹스의 향방은(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한 발언은 어딘가 아베 전 총리의 발언과 닮았다. 기시다 총리에게 주어진 '황금의 3년'.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의 정책이 '새로운 자본주의형 아베노믹스', 즉 '하이브리드형 아베노믹스'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는 2020년 9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아베노믹스의 정책적 지향성은 분명 그가 사망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창민 교수가 아베노믹스의 지향과 성과를 분석하며 아베노믹스의 세 화살인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인 재정 정책, 민간을 촉진하는 성장 전략은 어떤 배경에서 쏘아올렸는지, 그 성적은 어땠는지 돌아봤다. 이야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형 장기 불황의 원인과 모양을 짚는 데서 시작한다.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한 발언은 어딘가 아베 전 총리의 발언과 닮았다. 기시다 총리에게 주어진 '황금의 3년'.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의 정책이 '새로운 자본주의형 아베노믹스', 즉 '하이브리드형 아베노믹스'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는 2020년 9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아베노믹스의 정책적 지향성은 분명 그가 사망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창민 교수가 아베노믹스의 지향과 성과를 분석하며 아베노믹스의 세 화살인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인 재정 정책, 민간을 촉진하는 성장 전략은 어떤 배경에서 쏘아올렸는지, 그 성적은 어땠는지 돌아봤다. 이야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형 장기 불황의 원인과 모양을 짚는 데서 시작한다.
3. 아베가 건설한 전후 일본(토바이어스 해리스, <뉴욕타임스>)
아베 신조의 전기 작가이기도 한 토바이어스 해리스 미국진보센터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아베 신조를 요약하는 두 단어로 ‘국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택한다. 그는 아베가 현실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본질을 놓치고 있으며, 아베가 일본을 다시금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노선을 고집했다고 평가한다.
4. 퇴임 후에도 강고했던 아베의 영향력(데이비드 생어,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이었던 데이비드 생어는 일본이 오랜 경제 불황으로 제2의 경제대국 자리에서 물러나고 동시에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던 시기에 일본을 외교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시도한 실용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아베는 대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때론 굴욕적으로 보일 정도로 미국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고, 대미동맹의 확장판으로 인도, 호주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 정립에 힘썼다. 그는 이 모든 게 짧은 영화 뒤에 쇠락한 일본의 잠재성과 한계를 간파한 아베의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아베 신조의 전기 작가이기도 한 토바이어스 해리스 미국진보센터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아베 신조를 요약하는 두 단어로 ‘국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택한다. 그는 아베가 현실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본질을 놓치고 있으며, 아베가 일본을 다시금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노선을 고집했다고 평가한다.
4. 퇴임 후에도 강고했던 아베의 영향력(데이비드 생어,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이었던 데이비드 생어는 일본이 오랜 경제 불황으로 제2의 경제대국 자리에서 물러나고 동시에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던 시기에 일본을 외교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시도한 실용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아베는 대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때론 굴욕적으로 보일 정도로 미국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고, 대미동맹의 확장판으로 인도, 호주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 정립에 힘썼다. 그는 이 모든 게 짧은 영화 뒤에 쇠락한 일본의 잠재성과 한계를 간파한 아베의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