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G Cheong ·
2023/11/14

@유지원 

답변 감사드립니다.

 근래 모 공공기관에서 정보 전달 관련 개선안을 위해 입찰을 받았는데 어떻게 바뀌려나 궁금해서 입찰 요청 서류를 보니 업무 요건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 것인가' 에 관련된 업무 지시사항이 전혀 없어서 놀라고, 또 한편 답답해졌던 적이 있습니다. 벤치마킹하는 곳들하고 비교하여 가장 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UI 쪽이었는데 말이죠. 말씀하신, 비전문가들이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자체를 모른다는 것도 문제인 듯 합니다.

 실제로 공공기관의 정보를 사용자가 보기 쉽고 이용하기 쉽게 바꾸어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BM으로 오랜 기간 안정된 사업을 꾸려가는 회사들도 있는데 그만큼 행정 쪽에서 자발적으로 획기적으로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그도 그 나름대로 또 내외부적으로 바뀌기, 바꾸기 어려운 이유가 있을테지만요)

 스티브잡스-애플도 그렇고, 가장 최근의 ChatGPT의 급속한 성공도 UI 부분이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나 화자되고 있는데요.

 이 참에 저도 불평만 하지 말고 그 불편한 갭을 메우는 서비스라도 하나 런칭해서 사용자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은 어떨까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이런 생각의 많은 부분들이, 작가님이 저같은 분야 바깥의 사람들에게 글자 이야기를 잘 들려주신 덕분입니다 ^^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13

@mungmung31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북디자인과 편집디자인을 하시다니 반갑습니다. 저도 지금 한참 민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디자인 작업을 하는 중이고, 책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독서 공간 및 시간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책 풍경』(을유문화사) 출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언급하신 AG초특태고딕-좁은너비, 그리고 슈이써60은 직접 써보지 못했어요. AG초특태고딕은 본문용이 아니라 제목용입니다. 제목으로 두드러지라고 만든 것이고 본문용을 고려해서 만든 것이 아니니 당연히 본문에 쓰면 용도 이탈로 부담스럽겠지요. 짧은 본문이라면 강렬한 효과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편, 본문용으로도 새로운 폰트들이 선을 보이고 있어요. 본문 디자인은 많은 양의 텍스트를 다루는 영역이라 인간 신체의 피로도 및 익숙함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가령 2010년도 후반에 등장한 산돌정체의 경우 좋은 가독성을 갖고 있지만 계속 읽다보면 ‘마찰이 조금 큰 길’을 걷는 기분이 들어요. 여느 명조체들은 붓으로 쓴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산돌정체는 연필이나 펜 등 또박또박 지면을 마찰해서 쓴 경필 글씨를 바탕으로 하거든요. 이런 특성이 독서 속도에 영향을 주어 독서를 다소 느리게 만듭니다.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글을 산돌정체로 읽으면 답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꼭꼭 붙들어두고 싶은 짧은 산문을 읽기에는 기존 명조체보다 정서적으로 더 잘 조응하는 효과가 생기기도 해요.

본문용 글자체는 이런 미묘한 작용들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글자나 조판에 금방 익숙해지기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무언가가 부족해서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에는 용기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우리의 말투도 달라지고 언어도 달라지고 문체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글자체만 예전 모습 그대로 답습되고 정체되면 곤란하겠죠. 시각적 말투인 폰트의 모양도 시대의 요청과 흐름을 반영해갑니다. 이것은 기능적인 요구만은 아니겠지요.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13

@HG Cheong  
안녕하세요. 일요일에 답을 드린다고 했는데요, 어쩐지 일요일에 답을 하기 겸연쩍어서 이렇게 월요일 오전을 기약했습니다. :)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자 풍경』을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한국에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고, 개인이나 스튜디오, 때로 기업 디자인도 좋을 때가 많은데요, 공공 디자인은 왜 이렇게 좋지 않은가, 저도 늘 근심 걱정입니다. 

디자인 정책 자문을 가보면 ‘행정을 하는 결정자’와 ‘시민들’이라는 두 항만 있고, 정작 디자인의 주체인 ‘디자이너’라는 항은 빠져있는 모습을 목도하곤 합니다. 전문 분야로서의 디자인에 대해, 디자인 비전문가들이 스스로 안목과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 한국 공공 디자인에서의 늪이라고 생각해요. 

정책 아닌 개인의 실천 차원이긴 합니다만, 저는 행정 쪽을 설득하기보다는 디자인을 누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져서 더 좋은 디자인을 요구하게 되는 방향에 힘을 싣는 편이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디자인 분야 밖으로 나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칼럼도 쓰고 저술도 하고 강연도 많이 합니다. 인문, 사회, 과학과 공학, 교육, 의학, 법조 등 글자를 사용하는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글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분야에 대해 분야 바깥을 향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기여 또한 정당히 인정 받기를 바랍니다.

근래에 반가웠던 기별 중 하나는 ‘고령자를 배려하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저의 글이 향후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 실린다는 소식이었어요. 이렇게 되면 글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더 일반 상식으로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작은 힘이지만 조금씩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하는 수 밖에요.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11

@HG Cheong  @mungmung31 
안녕하세요! 두 분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그제 저녁부터 오늘까지 계속 틈이 없어서 답을 드리지 못했어요. 괜찮으시다면 내일 일요일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겠어요? 잘 숙성시킨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룩커
·
2023/11/09

안녕하세요. 저는 편집디자이너로 주로 북디자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책과 달리 직접적으로 질문을 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먼저 최근에 만들어진 AG초특태고딕-좁은너비와 슈이써60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둘 다 본문에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서체라 용도가 제한적이라고 보는데 이는 요 몇년간 만들어진 서체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 이 또한 유행인 것인지 아니면 따로 이유가 있는 것인지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G Cheong ·
2023/11/09

안녕하세요
먼저 글자풍경의 작가님께 글자와 타이포그래피에 대하여 이렇게 직접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아래 말씀하신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폰트..에서 조금더 들어간 질문일 수 있겠네요.

업무상 우리나라 및 외국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볼 일이 자주 있는 1인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 나라마다 다른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점이 종종 눈에 띄는데 가장 큰 점이라면 우리나라 공공기관 서류들의 '사용자에 대한 배려없음'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한글' 양식의 문서로만 공개되던 데서 'pdf'양식으로도 첨부자료가 나오는 등 약간의 개선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서류들, 거기의 글자들과 레이아웃들은 폰트부터 시작하여 줄간격, 한 페이지에 들어가있는 정보량의 단위 등, 가독성이 너무나 떨어지고, 정보를 수용하는 대상에게 정보의 표현 형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구나 하고 느낍니다. 

민간 분야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쟁과 혁신으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공공 분야에서는 개선..정도가 아니라 몇십년전부터 고착된 정보 전달의 시각화 방식에 대해서 완전히 뒤엎고 새로 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나가는 정도의 개혁이 일어나야 할 거 같다는 심정인데요, 

공공 분야에서 사용하는 타이포그래피의 현황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 싶고, 개선의 여지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인지 (문제 인식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환경적인 필요충분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그러한 개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공공기관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관리자들에게 작가님 책 의무적으로 읽혔으면 좋겠네요 ^^)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08

@rtrtcom93 
범죄수사학에서 다루는 필적학은 저도 궁금합니다. 저는 필적 감정가가 아니라서 글씨의 모양을 사람 성격과 연결짓는 일은 조심스럽게 여기는 편입니다. 

전에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할 때, 의대생이 수강한 적이 있었어요. 타과생에게 전공 수업이 열려있는 학교였거든요. 그 학생은 의학에서 다루는 필적학 영어 논문 몇 편을 찾아서 뽑아왔어요. 글자는 몸이 남긴 자국이니, 글씨를 보고 환자의 용태에 대한 단서를 알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것 같았어요. 저도 필적에 관해서는 성격보다는 몸의 상태 쪽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어있겠지요? 그러면 좋겠네요. 글씨의 상태로도 환자를 헤아려보려는 마음을 가졌으니까요.

r
·
2023/11/08

사람마다 글씨체가 다르고, 범죄 프로파일링에서는 필적을 통해서 범인을 찾아 낸다는데, 가벼운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글씨체와 MBTI가 관계가 있을까요? 계획적인 사람은 뭔가 딱딱하고 잘 알아볼수 있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을거 같고, 자유분방한 사람은 자신만 알아 볼수 있는 그런 글씨체를 가지고 있을거 같아요.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08

@아매오 
세계문자에 관한 질문이군요. 

세계문학을 떠올려보시면 비슷해요. 가령 독문학이라면 (한국어로 번역이 되긴 하지만) 좋은 문학인지 아닌지 한국 독자도 알아볼 수는 있지요.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알아야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하고요. 

세계문자도 인류로서 비슷한 신체와 공간 감각을 공유하는 보편성과, 각 문자 문화권마다의 특수성이 있어요. 좋은 글씨 혹은 폰트인지는 문자체계가 달라도 알아봐요. 전문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일반인들도 대략 느끼지요. 하지만 그 문자의 배경을 깊이 이해하는 연구자나 네이티브만 알아보는 영역도 있어요. 아랍 문자의 폰트를 한국인이 만드는 건, 독일 문학을 한국인이 독일어로 쓰는 것과도 비슷한 일일 거에요. 불가능하진 않지만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며 미묘한 뉘앙스까지 잘 알아야 해요. 

제 경우, 세계문자시스템 중에는 마야 문자와 오리야(Oriya) 문자 좋아합니다. 문자체계를 좋아하는 것과 그 문자체계의 특정한 양식, 글씨체, 폰트를 좋아하는 건 다른 일이에요. 독일어는 영어,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로마자를 씁니다. 그중 독일 호프집을 떠올리게 하는 프락투어(Fraktur)라는 양식이 독일적 특징이 두드러져요. 프락투어 중에도 페테 프락투어, 클라이스트 프락투어 등이 있는데 이 각각은 활자체 혹은 폰트이고요. 나란히 놓인 모습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어요. (독일식 로마자 양식 중에 저는 프락투어보다는 슈바바허를, 폰트 중에는 페테 프락투어보다는 클라이스트 프락투어를 선호합니다.) 이상 범주에 관한 이야기였고요. 

질문으로 예를 드신 아랍문자도 여러 양식이 있어요. 이런 양식들이 나타난 고유하고 개별적인 문화적인 현상 이면에는, 세계문자들이 가진 보편적인 특성도 있어요.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글자, 또박또박 쓴 정체, 빠른 속도감이 유려한 곡선을 만드는 흘림체. 이런 경향은 대개의 문자체계에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셋 중 어느 경향성을 가지느냐를 기준으로 낯선 문자를 보면 재미있답니다.

유지원 인증된 계정 ·
2023/11/08

@똑순이 
예, 똑순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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