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8

@배윤성 님, 안녕하세요? 『당선, 합격, 계급』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품이 많이 들어간 책인데... 취재하고 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가성비가 높은 작업은 아니었지만 혼자서(어쩌면 혼자서만) 보람을 품고 있어요. 저한테는 논픽션 단행본을 쓰는 훈련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정이 있는 분야이니 논픽션을 더 쓰기는 할 텐데 많이 쓰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픽션에 비해 확실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서요.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8

@jojoqqq22 님, 안녕하세요. 답변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1. 네, 있었습니다. 한 분도 아니고 여러 분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도 사정과 의견이 있었고,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급사실주의 단행본 시리즈가 이어져 꼭 모시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2. 굉장히 개인주의자이고, 사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합니다. 금세 피곤해지기도 하고, 많은 경우 방향 없는 대화 자체를 잘 즐기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사람보다 글자가 더 좋네요. 어떤 잔혹한 사건들이나 군중심리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보면서 인간혐오를 느끼기도 합니다. 인간 전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지인들도 있는데 그 폭이 넓지 않은 거 같아요.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해서는 연민도 있고 책임도 느낍니다. 가엾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믐 인스타그램 해킹...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해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ㅠ.ㅠ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8

@qpzl1004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소통하니 저도 신기하고 좋습니다.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저 역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 말씀에 매우 동감하고, 거기에 더해 말씀하신 대로 부모가 되는 일보다 자아실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가치관 변화도 분명히 영향이 있었겠지요.
저는 약간 엉뚱한 생각도 해보는데요, 기본적으로 한국에, 또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정도 면적의 땅에 이렇게 많은 인구가 있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연환경에 큰 부담을 줬던 것 아닐까.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경쟁도 극심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이든 지구든 인구가 줄어드는 게 오히려 옳은 방향 아닐까. 보다 적은 사람이 보다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산업 구조, 경제 구조가 인구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가 사회에 큰 충격이 될 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 충격이 고통스럽지 않게 잘 대응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보고요. 하지만 그 해법이 출생을 늘리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너무 과격한 의견일까요.

기며니 ·
2023/10/18

@장강명 작가님 소설의 독보적인 흡입력은 노력이 아닌 재능이겠지, 소설을 쓰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다 쉬운 선택이었겠거니 라고 넘겨짚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을 울리네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들 틈에서 창작의 시간을 벌겠다는 선택을 하신 과정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없는 질문에 이런 귀한 답변을 해주시는, 당신의 선택에 당당한 자랑스러운 작가 선배가 계셔서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장가명 소설가님을 소설가 선배라고 부를 수 있도록, 쉽게 쓰인 글들로 빠르게 생계유지 할만큼 돈을 벌고싶다는 욕심을 줄이고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7

@기며니 님, 응원 감사합니다. 조금 묘한 일인데요, 소설가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냥 프리랜서, 작가 혹은 글쟁이가 아니라 소설가라고 저 자신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어요.
들이는 비용(시간) 대비 거두는 수익을 따져보면 저는 소설을 쓰지 않아야 하거든요. 강연이나 방송 출연, 판권 수익이 소설 인세보다 훨씬 높습니다. 제가 좋은 매체들에 칼럼을 실었기 때문에 칼럼 원고 고료가 소설 원고 고료보다 높고, 판매량은 비슷한데 에세이가 훨씬 쓰기 쉬우므로 에세이에 비해서도 소설은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판권 수익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에 합류하면 단행본을 내지 않아도 얻을 수 있고요.
그런데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소설 단행본이더라고요. 위의 제안들을 거부하면서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이상하지요. 이런 경험에 감사하기도 하고, 내심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자신이 믿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정말 감사한 상황이더라고요.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6

@strawhat 님, 응원 감사합니다. 의도는 거창했는데 제대로 성과를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벌이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네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6

(3/3) 저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생각을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그려내는 도구가 만화든, 노래든, 영화든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데 꼭 소설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지 물으셨지요. 같은 질문을 만화나 노래, 영화에도 던질 수 있겠지요. 그러면 결국 같은 답이 나옵니다. 현실을 그려내는 도구가 만화여야 할 이유도 없고 영화여야 할 이유도 없을 거 같습니다. 소설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무엇무엇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문장은 그 무엇무엇에 대해 실제로는 별로 말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세상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제가 살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탈출구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선택한 나는 이렇게 펼쳐진 가능성으로 무엇을 하려는가’가 진짜 집중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6

(2/3)
한국의 성차별에 대해 기사나 다큐멘터리로 다룰 수 있는데 페미니즘 소설이 있어야 할 이유는 뭘까요. 저는 현실이라는 게 팩트의 총합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재구성하고 각 등장인물들에 대해 보상 혹은 처벌을 내리는 장소가 실제로 세상에 있습니다. 법정입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 이상을 다룹니다. 가해자의 의도를 따지기도 하고,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묻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실의 표면 아래로, 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기에 현실을 재구성하는데 소설의 특별한 장점이 생기지 않나 합니다. 그런 접근법이 때로는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삶에 동화되는 힘도 거기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읽고 나서의 갑갑한 기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른바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하는 작품들을 접할 때 그런 괴로운 기분을 맛봅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현실을 재구성할 때 저의 성실성을 계속 따져묻게 됩니다.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6

@조율 님, 안녕하세요. 장강명입니다. 죄송한 기분으로 답글을 답니다. 답이 길어져 세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얼룩소에 올리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1/3)
몇몇 질문들은 제가 아래 적은 글 몇 개에서 답이 좀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 외에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쓰다 보니 반론의 형태가 되었지만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김형수 작가님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 문학의 효용을 설명하는 간단한 일화가 나옵니다. 김 작가님이 어릴 때 버스 안내양이 쓴 『어느 안내양의 수기』라는 책을 읽고 펑펑 울었는데 이후에 버스 안에서 안내양을 배려하면서 행동하고 손님과 안내양이 싸우면 늘 안내양의 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김 작가님은 그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누구나 안내양에게 동화된다고, 그것을 문학의 사회적 작용이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썼습니다.
월급사실주의의 목표는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그 이상의 문학적 성취도 달성한다는 것이기에 전자에만 그친 것 같다고 읽으셨다면 그것은 저희의 실패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자 역시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는 면에서는 소설이 다큐보다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래에도 적었지만 다큐멘터리가 한국에서 그리 활발하게 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장강명 인증된 계정 ·
2023/10/16

@nonsulroad 님, 감사합니다.

1. 댓글부대들이 있고, 댓글부대를 실행시키는 기관이나 세력이 있는 건 분명한 거 같습니다. 한국만의 일이 아닌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그 댓글부대들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배후 세력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상에 의존해서 쓴 부분이 독자 분들이 짐작하시는 것보다 많습니다.

2. 그에 대한 지적이 업계에서도 나오는데, 수면 위에서 활자 형태로 거론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남자 작가들이나 출판 관계자들끼리 모이면 이야기합니다. 치졸한 불만들을 제외하고 의미 있는 지적들을 추려보면 이러합니다. △설교조, 계몽조인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페미니즘 전체에 반대하는 반동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 아닌가, 비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아닌가 △성평등을 말한다기보다는 남성혐오에 가까운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일관적인 잣대 없이 작품이 아닌 작가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남성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등.
어떤 인간도 타고난 성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억압받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며, 한국 사회에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하고 문학이 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끼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저 역시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한국 문학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지 않고, 또 저 역시 40대 남성으로서 가부장제의 수혜자임을 부정할 수 없어 더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고통의 주체는 관념이 아닌 개인이며, 제 글은 거기에서 물러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고 최근에는 그 생각이 더 굳어졌습니다.

3. 저도 궁금합니다. 냉정하게 볼 때 그들만의 리그, 고급 취미가 될 가능성을 부인할 수도 없다고 보고요. 다만 아래 사사키 아타루 이야기를 적기도 했는데, 그와 별개로 ‘(순)문학은 이제 죽었다’는 식의 주장은 냉철한 시장 분석조차 못 되는 우스운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최악의 경우에도 지금의 클래식, 혹은 국악 정도의 위상이나 시장 규모는 유지할 거 같아요. 적어도 두 세대 정도는요. 게다가 클래식이나 국악과 달리 IP 비즈니스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돈이 있고, 또 창작 비용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지금 웹소설이 아닌 문학출판업의 미래도 신문업의 미래보다는 밝습니다.
더 시간이 흘러 지금의 ‘문학 소설’이라는 형태가 향가나 가사, 서사시처럼 대중적인 생명을 다하는 미래도 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거 같습니다. 저한테는 지금의 소설 문학이 너무나 크고 강렬하게 다가와서 잘 상상이 안 가는 미래이지만, 제 소망대로 세상이 흘러가지는 않겠지요. 어느 쪽이건 그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저는 저의 생계를 잘 살피면서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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