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소녀의 추억 - 옛 소설 ‘그린맨션’ 독후감

이효근
이효근 · 정신과 의사
2024/04/04
1.

어렸을 때, 저희 집에도 '소년소녀 세계 명작 소설 전집' 뭐 대충 이런 이름의 양장본 세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런 전집류는 보통 '월부'로 들이는 집들이 많았었지요. 가격이 비쌌으니까요. 대부분의 경우에, 마음 약한 아버지들이 책을 팔러온 친지들의 눈물 콧물 섞인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결과물이기 십상이었습니다. 저희 집도 뭐 비슷했던 것 같구요. '효근이도 이제 학교 들어가는데 집에 이런 거 한 질 정도는 있어야지?' 뭐 이런 뻔한 수사들을, 아버지를 찾아온 친지는 주섬주섬 이야기했을 테지요.

저희 집에 있던 것은 50권 짜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그 전집에 참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독서의 시작'이라고 할까요. 그 전집의 책들은 글 사이사이의 삽화도 참 좋았습니다. 저작권 같은 건 신경도 안쓰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도 그 삽화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간행된 전집에서 무단 복제한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책마다 그림체가 다 달랐는데, 몇몇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시간이 흘러 그 전집은 제 손을 떠났습니다. 아마 친척 동생이나 부모님 친구분의 나이 어린 자녀 몫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그 뒤로도 종종 생각이 나고, 언젠가 기회만 된다면 몇 권은 꼭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삽화 때문에라도 딱 그 편집으로요.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 삽화들을 다시 만나는 복을 누리진 못했습니다. '톨스토이 우화집'도 전집의 멤버 중 하나였는데, 지금도 '바보 이반'이라거나 '하인 에메리안'을 떠올리면 그 삽화에 그려져 있던 이반과 에메리안의 얼굴이 대번에 떠오릅니다. 나중에 다른 판본을 찾아 읽어봐도, 삽화가 나오면 대번 '아아 나의 이반은 나의 에메리안은 이렇지 않다능!' 뭐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아아, 아버지는 월부장수에게 좀더 매몰차게 거절을 했어야 했ㄷ... 아 이게 아닌가. 아무튼.

2.

제 기억에 어렴풋이 남은 전집의 전체 구성은 썩 무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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