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7개월, 마치 홀린 듯 혼자 치킨집을 찾아갔다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3/27
가리지 않고 많이, 잘 먹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다. 가정 내 분위기도 그랬지만 내 잔망스러움도 한몫 했다. 어린이가 청국장에 파김치를 좋아하면 어른들이 칭찬하는 걸 일찍이 파악하고 만 것이다. 좋아서 먹었을 뿐인데 칭찬이라니, 이게 웬 떡인가.

딱히 할 줄 아는 재주 없고 내성적인 어린이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어린이 기피 음식에 대한 선호를 무럭무럭 키웠다. 식탁 위의 소시지가 나를 유혹해도, 내 젓가락은 시뻘건 고춧가루로 칠갑한 고등어조림을 향해 돌진했다. 갈수록 더 다양한 음식을 먹었고, 또 좋아하게 됐다.

타고난 체질 또한 나의 잡식을 거들었다. 내 몸은 모든 음식을 잘도 받아들였다. 한의원에서 음식에 대한 질문지를 작성하면 내 답은 단순한 일렬종대를 이뤘다. 좋아하는 음식은 전부. 싫어하는 음식은 전무. 소화가 안 되거나 불편한 음식이 하나도 없냐는 질문에, 곰곰 생각해 봐도 없었다.

무엇이든 잘 먹고 건강했으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늘 죄의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동물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었다. 어떤 동물은 먹고, 어떤 동물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 어떤 동물이든 먹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편리하게도, 먹는 순간엔 잊었다. 돌아서면 이내 생각났다. 기분 좋던 포만감은 얼마 안 가 불쾌감으로 바뀌곤 했다. 불필요하리만큼 많이 먹고, 또 죄의식에 시달리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다.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고,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몇 달 전, 그래서 무턱대고 채식을 시작했다. 따로 공부를 하거나 알아보지도 않았다. 내 기준은 오직 '죄의식'이었다. 영양학적 고려도 없었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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