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 일기] 3. 갱년기, 엄마만의 문제일까

신예희
신예희 인증된 계정 · 위인입니다
2024/03/26
가계부 앱의 지출 항목별 통계를 확인하다 살짝 놀랐다. 최근 이삼 년 사이, 옷값 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그러고 보니 비싼 코트와 정장, 가방 같은 걸 사지 않은지 꽤 되었다. 대신 두툼하거나 얇은 맨투맨과 티셔츠, 카고 팬츠 서너 벌을 이리저리 돌려 입는다. 젊은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언제나 붐비는 성수동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그들의 옷차림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후드티는 예외다. 이젠 후드 무게가 버겁더라고). 요런 옷은 대부분 무신사 세일에서 건진 건데, 블랙프라이데이든 새해맞이 세일이든 신학기 세일이든 이름은 다르지만 1년 내내 세일을 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다. 뭐니 뭐니 해도 활동하기 편하다. 오버핏의 유행, 부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스키니진과 하이힐… 돌아오지 마…
 
2, 30대엔 오히려 한껏 어른스럽게 치장하고 다녔다. 스판기가 없어 앉을 때마다 엉덩이 솔기가 터질 것 같은 딱 맞는 정장 원피스에 4인치 하이힐을 교복처럼 입고 신었고, 메이크업도 빈틈없이 꼼꼼하게 했다. 그 당시 사진을 꺼내보면 새삼 놀랍다. 대체 누구시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여성분은요. 뭘 그렇게까지 잔뜩 힘주고 다녔던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를 지켜주는 보호장구 같은 거라고 믿었던 것도 같다. 단단한 어른의 모습은 칼 같은 정장 차림일 거로 생각하며 갑옷을 두르고 방패를 손에 들듯 옷을 차려입었지.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리랜서가 되었는데, 사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이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90년대 후반,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급격한 세대교체가 시작되던 때라 온 사방에서 일이 넘쳐났다. 우리 회사도 홈페이지라는 걸 만들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사람 없냐며 내가 다니던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조교실로 수많은 구인 연락이 왔고, 대부분의 일이 당시로선 드물게 포토샵을 비롯한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던 내 차지였다. 이런 식이면 계속 혼자 쭈욱 일할 수 있겠다 싶었고,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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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프리랜서. 글, 그림, 영상, 여행, 전시 작업에 관여합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어쩌다 운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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