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하고 노팬티가 되었다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3/27
얼마 전, 일 때문에 만난 분들과 계획에 없던 식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 비건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혹시나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마음을 졸였는데,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맛집을 마다하고 소박한 한식당을 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비빔밥을 주문하며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계란 후라이는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마도 멸치육수가 들어간 국이 따라 나올 듯해 그 또한 주실 필요 없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그날 처음 만난 분의 한 마디.

"편식이 심하시구나. 그런 줄 알았으면 다른 데로 갈 걸 그랬어요."

편식이라. 편견, 편애에 들어가는 그 '편(偏)'자가 아니던가. 왠지 모르게 뒷맛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내 기분 탓일까. 그가 주문한 것은 제육덮밥. 동물의 죽음에 마음이 쓰여서 더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먹겠다'는 결심이 불러온 변화
 
비건을 지향하게 된 후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언젠가는 결벽증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 채식을 결심하기 전의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고, 오죽하면 그게 뭐라고 자부심까지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웃으며 흘려 넘긴다.

예전의 나라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놨을 것이다. 상대방의 평가에 민감하고 행여 부정적인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던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깜냥으로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서 나는 자주 실패했고 그런 스스로에게 번번이 실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전보다 많이 단순해졌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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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써도 할 말이 남았다는 것에 매일 놀라는 사람. 글 써서 간식 사먹는 사람. 글 써서 밥 먹는 것이 목표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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