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은 닭발과 돼지 열병... 채식이 미안할 이유가 없네요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3/27
음식에 관한 한, 나는 차별이나 편애없이 퍽 공평한 기호를 갖고 있었다. 가리는 것도, 유별난 선호도 없었다. 그에 반해 친구들은 뚜렷한 기호가 있었으니, 친구들과 만나면 기꺼이 그에 맞추곤 했다. 친구들이 메뉴를 고르고 나는 늘 환영했다.

메뉴 선정도 때에 따라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오랜 친구들과는 가장 만족도 높은 방법이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눈치볼 것 없이 메뉴를 골랐고 나 또한 이 편이 좋았다. 다채로운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페스코 채식을 하게 되었다. 육류를 먹지 않겠다는 금기를 자처한 것이다. 페스코는 육류를 배제할 뿐 해산물과 달걀, 우유를 허용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내 기호를 주장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한동안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비육식 메뉴가 있거나 1인 1 메뉴를 고르는 식당에 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삼겹살집, 치킨집, 꼬치구이 등 거의 단일 품목을 파는 식당이 그날의 선택지로 오르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즐거운 식사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 말라며, 내가 나서서 삼겹살집을 주창하기도 했다. 고깃집에 가서는 알고 보면 여기가 그렇게 채소가 풍성할 수 없다며, 보란 듯이 상추쌈에 마늘과 고추를 올려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비우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고기 없는 상추쌈을 좋아하고 된장찌개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한 끼 식사였다. 그러나 식사 후 온몸에 밴 고기 냄새를 맡을 때면 씁쓸해졌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그리고 육식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판 위의 고기를 보는 것이 더욱 괴로워졌다.

더러는 식탁 위에 고기를 두고 내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둘러댔다. 그 고기가 동물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워서 먹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누구의 입맛도 떨어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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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써도 할 말이 남았다는 것에 매일 놀라는 사람. 글 써서 간식 사먹는 사람. 글 써서 밥 먹는 것이 목표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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