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채식해" 그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3/27
어렸을 때 내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동네 슈퍼마켓 아들이었다. 그 다음은 떡볶이집 딸. 먹고 또 먹어도 쌓여있는 음식이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보리고개를 말할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고 딱히 가난했던 것도 아니지만, 우리 삼남매의 먹성은 늘 엄마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배가 부른 것도 잠시뿐. 눈만 마주치면 밥, 밥 하는 삼남매에게 오죽하면 엄마가 "니들은 내가 밥으로 보이니?" 퉁을 주실 만큼.

먹다가 남긴 과자를 집에 가서 먹겠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다가 남기다니. 그리고 그 남은 과자가 그대로 있다니. 우리집에선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손에서 놓은 빵조각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언니나 동생의 피와 살이 되었겠거니.

입맛은 뒷전이었다. 취향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제와 엄마가 내 입맛을 하나도 모른다 싶을 땐 괜히 서운한 척 하지만,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불호 같은 것은 튀어나올 여지가 없었다. 삼남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스피드. 빠른 자만이 음식을 쟁취했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미더덕을 오독오독 씹어먹고, 양념게장을 사탕 먹듯 해치우는 꼬맹이들이었다. 먹성이 좋지 않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동네 어른들은 우리를 꽤나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우리를 엄마는 은근히 자랑스러워 했다.

삼남매 모두 편식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언니는 고기를, 동생은 해산물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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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써도 할 말이 남았다는 것에 매일 놀라는 사람. 글 써서 간식 사먹는 사람. 글 써서 밥 먹는 것이 목표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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