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놓고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삼전도의 굴욕'까지 끌고와서 '그 굴욕을 다시 당하고 싶은 거냐'며 비판적 입장을 비판합니다.광해군이 중립 외교를 폈던 이유는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저 실록 속의 한 문장 "고상한 말은 국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강홍립 등의 죄를 논할 때가 어찌 없겠는가. 젊은이들의 부박한 논변은 잠시 멈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로 추정해 볼 뿐입니다. 역사학자인 이일화 선생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요동을 차지한 여진의 누루하치가 국호를 후금이라 하고 황제라 부르며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해왔다. 그러자 명나라는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군을 요청해왔고 조선에서는 강요에 못 이겨 군대 1만 3,000명을 보냈다. 도원수 강홍립은 광해군이 시킨 계획에 따라 싸얼후(지금의 반저우 선양 아래쪽)에서 적당히 싸우는 체하다가 후금에 항복했다. 그리고 강홍립은 조선이 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