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지난 글과 마찬가지로 이번 글도 합평이 어려웠어요. 율무선생 님 안에는 우물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글감 하나가 던져지면 끝없는 파장이 글로 펼쳐지네요. 웅크리고 있던 아픔과 상처들이 글감과 함께 딸려 나오는 걸 바라보면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턱을 괴고 그냥 한참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지난 번 합평에서 배설이란 말을 썼는데, 여전히 더 쏟아내셔야 하는 이야기가 많아 보입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 말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어요.

그럼에도 합평이니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배설'과 '작품'의 차이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배설은 있었던 이야기를 그야말로 남김 없이 뱉어내는 행동이겠죠. 내 안의 모든 찌꺼기를 토해 내리라, 써내려 가는 글.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정도 이 시기가 필요해요. 글을 어려워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이런 단계가 필요합니다. 장벽을 없애는 단계.

글 쓰기가 어렵지 않은 분이라면, 장벽을 크게 느끼지 않는 분이라면, 이제 배설을 넘어서야 하는 단계일지도 몰라요. 나의 이야기를 배설에서 작품으로 승화시키려면 필요한 건, 아무래도 편집이겠죠. 일단 뱉어놓은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독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거예요. 독자가 꼭 알아야 하는 핵심 이야기가 무엇인지, 내가 이 글을 통해서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지, 추려내는 것이죠. 이후 과감하게 잘라내는 시도가 필요해요. 곁가지라 생각되는 부분을 쳐내고, 사족인 부분들을 들어내고, 자르고 이어 붙이고. 그야말로 편집인 것이죠. 그래야 비로소 하나의 글, 작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율무선생 님처럼 한껏 뱉어내지 못해요.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하고,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마음을 잡지 못해 자르고 자른 누더기의 글을 생산해 내죠. 그런 글은 편집이 어려워요. 핵심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율무선생 님의 글은 반대예요. 오히려 많이 들어가 있어요. 이제 조금씩 이런 글을 퇴고하는 연습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쓸 것과 뺄 것을 가리는 눈, 그걸 길러가는 게 결국 퇴고인 것 같습니다.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율무선생 님은 남들이 갖지 못한 귀한 걸 갖고 계세요. 솔직함. 이건 글을 쓰는데 가장 큰 무기가 돼요. 결국 솔직하지 못해 필력은 생겼지만, 마지막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율무선생 님은 이미 솔직함을 겸비하셨기에, 다듬는 연습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얼에모는 끝나지만, 언제든 배설 혹은 작품을 써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바쁘실 텐데도 일정에 맞춰 늘 성실하게 마감해주시고 합평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율무선생 님께 이번 얼에모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시름을 내려놓는 시간이었길 간절히 바랍니다.  

빅맥쎄트 ·
2023/07/19

@율무선생 

합평 : 근로현장의 암울한 현실과 최근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시럽급여'와 관련된 글쓴이의 실제 경험과 이에 대한 생각이 표현된 글이다. 5인미만 사업장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 (굿즈 제작, 남녀 차별대우, 실업급여 처리 관련 外)과 사장님과 연관된 과거의 일들이 말하면서 글쓴이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부모님과 카페 사장을 통해 글쓴이는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이 아닌 남이 나를 보는 -꿀 빠는 애- 시선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글쓴이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성장 환경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포지션이 글쓴이의 마음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도 하다.

 글쓴이가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가시 돋친 말, 사회에서 받는 모든 차별과 어려움에서도 은퇴하는 삶을 살아가길 응원해 본다.

https://alook.so/posts/G1t9x5n

천세곡 ·
2023/07/18

정말 힘드셨겠어요. 글을 읽는데 화가 나서 제가 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 꺼내기가 쉽지 않은데 잘 풀어내 주셔서 감사해요. 은퇴선언 하셨으니 고통스러운 기억과도  '영원히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율무선생 ·
2023/07/17

@유영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청춘’ 이라고 올려치기 해버리면 , 그간 그러한 ‘청춘의 정의’ 로 인해 상처를 받고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고난과 역경’ 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으로 비춰지기 쉬워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해도 안 통하는 느낌이 자주 들곤 합니다 🥲

구겨진 종이라 하여도, 억겁의 횟수로 구겨지다보면 그 종이는 흡사 한지처럼 변하더라구요. 일반 종이보다 더욱 억세고 질겨져서 ‘다음 구김(상처)’ 가 오더라도 이젠 표시도 안 날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다만 너무 구겨져대서 한지처럼 변하고 싶지가 않네요 🥲

율무선생 ·
2023/07/17

@규니베타 맞아요 갤럭시가 최고네요 ㅠ 저는 저 사건 이후로 녹음하는 걸 습관들였어요…진짜 얼굴 안 맞대고 있다고 할말 못할말 구분 못하는 사람들 많더라구요 🥲

율무선생 ·
2023/07/17

@JACK alooker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 이제는 조금은 행복해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