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얼굴 근육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이규식의 목소리는 뭉개져 모호했다. 약 1미터 뒤에 앉은 남자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이 목소리를 노트북으로 옮겨 적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무대 중앙 PPT 화면에 언어장애인의 흐릿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목소리가 늘어지면 화면의 문장이 느려지고, 말이 끊기면 문장도 멈추는 일체감과 리듬감.그 덕에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북토크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중증 뇌병변 장애인 저자 이규식의 이야기를 문제 없이 들었다. 장애인권활동가 이규식과 청중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준 ‘1미터 뒤의 남자’는 김형진(1989년생).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5월 서울에서 주최한 행사에서도, 7월 광주에서 연 북토크에서도, 김형진은 이규식의 말을 오류 없이 전달했다. 그야말과 완벽한 동시통역이자, 직독직해.그는 외국어 통역 애플리케이션이나 챗GPT 등 신통방통 하다는 AI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외국어 번역기는 있어도, 뇌병변 장애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