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 할머니와 아빠, 동생, 나 이렇게 넷이 살게 됐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였다. 아빠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전국으로 일을 하러 다니셨고, 당연히 집에 자주 안 계셨다. 주로 어린 나와 동생을 돌봐주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청소하기, 밥하기, 어른을 대하는 태도,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미리 배울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할머니를 잘 챙기는 내 모습에 어른들은 일찍 철들었다며 칭찬했지만, 그 뒤엔 불쌍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꼭 함께 덧붙여 말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만족하며 살고 있었지만, 동정 어린 시선을 받을 때면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졌다. ‘내가 불쌍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12살 되던 해부터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됐고, 시간이 갈수록 약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인지 저하가 심해지셨다. 할머니는 낮에 냉장고 속 음식들을 전부 꺼내 음식물 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