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아가씨> '가위치기'의 쾌감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3/24
박찬욱 영화 미학의 뿌리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이미지는 파격적이고 외설스럽다. 그런데도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미지를 단순히 볼거리로 활용해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금지된 것을 깨겠다는 의지의 이야기를 미적인 형태로 설득하는 게 결정적인 이유다.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 이후 3년, 국내 연출작 <박쥐>(2009) 이후 7년 만에 만든 <아가씨>(2016)는 영국 출신의 새라 워터스가 쓴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영화는 원작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옮겼다.

소매치기로 살아가던 숙희(김태리)에게 후지와라(하정우) 백작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엄마에게 거액을 상속받은 여인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가로채 서로 나누자는 것. 히데코는 거대한 저택에서 삼촌 코우즈키(조진웅)와 살고 있다. 말이야 함께 사는 것이지 거의 잡혀 사는 꼴이다. 그런 히데코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보통 방법으로는 힘들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숙희는 하녀로 신분 위장하여 히데코에게 접근한다. 히데코의 수발을 들면서 기회가 있을 때면 남녀 관계에는 숙맥인 그녀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준다. 결국에는 히데코가 백작을 사랑하도록 만들고 결혼까지 하게 하여 재산을 뺏으려는 속셈이다. 근데 문제가 생긴다. 히데코의 목욕을 돕던 중 숙희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생긴다. 그건 히데코도 마찬가지다. 계획이고 뭐고, 이들은 후지와라와 코우즈키의 눈길을 피해 금기의 사랑을 나눈다.
1930년대 배경이 중요한 이유는 <아가씨>의 정체성과 관계있다. 영국 소설과 한국 영화의 결합인 것처럼 일제 강점기, 즉 경성 시대는 온갖 것이 혼재한 시대였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경성에는 우리 고유문화에 왜색이 더해졌다. 시대의 특성상 근대 문물과 신문물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힘겨루기가 팽팽하던 때였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충돌했고 신분 관계가 요동쳤다. 전에 없던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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