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공간에 대한 추억: 동대문운동장

한승백
한승백 · sbhan.net
2023/10/10
 역사의 공간은 집단적 기억을 남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 동대문야구장을 추억한다. 그곳은 산업화 시대 사회적 이동의 열풍 속에 도시로 몰려든 지역의 사람들이 고향의 고교 야구팀을 응원하고, 학원스포츠의 순수함과 열정에 열광하며, 자긍심과 향수를 느꼈던 추억의 스포츠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10월 15일 일제가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지은 근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건축 당시 이곳은 일본의 고시엔 다음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였다. 이곳에서 식민지 조선의 가장 큰 체육행사였던 ‘연보전’(연희전문-보성전문)과 경평축구가 열렸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노제(1926년)가 지내졌다. 비록 일제가 자신들의 왕자의 결혼을 기념해 건립했다지만 일제강점기 동대문운동장은 스포츠를 통해 식민국 일본과 경쟁하고, 나라 잃은 울분과 회한을 달래던 민족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였다.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꾼 해방 후에는 찬탁과 반탁 집회가 열렸던 대표적 군중집회 장소였고,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장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박스컵을 비롯한 수많은 축구 경기가 열렸고, 4대 메이저 대회라 불렸던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가 개최되며 고교야구의 성지로 불렸다.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활활 타올랐던 고교야구 황금기의 추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추억거리이다. 80년대에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개막식이 열리기도 했지만 19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서울운동장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에 맞게 기능도 크게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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