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세상을 떠나다

한승백
한승백 · sbhan.net
2023/10/10
60년대 분리주의가 합법이던 시절, 미국 흑인에게 인종차별은 일상이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캐시어스 클레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살던 마이애미의 식당, 쇼핑센터, 호텔, 심지어 화장실까지 ‘White Only’란 문구가 적혀있었고, 2등 시민 흑인은 출입할 수 없었다. 복싱체육관은 흑인 청년들이 차별받지 않았던 몇 안 되는 공간이었고, 스스로 통제하고,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케시어스 클레이는 명코치 안젤로 던디를 만나 프로선수로 성장했다.
​63~64년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수많은 인사들이 투옥되고, 침례교 폭탄 테러로 4명의 흑인 소녀가 사망하고,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장면처럼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의회에 민권법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시절이었다. ‘백인을 즐겁게 하기’, 그것은 당시 백인 지배 사회에서 흑인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다른 분야와 달리 유독 연예계와 스포츠 분야에서 흑인 유명인사가 쏟아져 나온 이유였다. 


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프로로 데뷔했던 케시어스 클레이. TV 속 케시어스 클레이는 과장된 언변과 상대에 대한 직설적 도발, 때로는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개지랄을 떠는 고삐리처럼 기행을 일삼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미국에 온 비틀즈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고, 소니 리스턴과의 챔프전을 앞두고는 8라운드에 이기겠다고 객기를 부렸으며,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라는 당시로서는 이상한 말을 쉴 새 없이 떠벌였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 아래 그는 성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광대였고, 자기 연출에 능했으며, 스스로를 홍보할 줄 아는 감각이 있는 흑인이었다.
64년 소니 리스턴을 꺾고 챔피언에 오를 때 즈음, 캐시어스 클레이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게 뭐냐, 미국에다 이슬람 독립 국가를 만든다는 급진적 종파 운동이다. 그곳에서 말콤 엑스를 만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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