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 ~ 1963년의 체육특기자제도

한승백
한승백 · sbhan.net
2023/10/10
여전히 체육특기자제도가 군사정부에 의해 1972년에 생겨났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체육백서 같은 정부 문서도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60년대 신문만 들춰봐도 터무니 없는 주장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체육특기자제도를 197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게 단순히 연도의 착오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2년은 유신이 선포된 해였고, 이 제도를 자연스럽게 국가주의 스포츠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간과하게 되는 게 행위자이다. 체육특기자제도 72년 기원의 왜곡 주장은 이 제도가 왜 이렇게 뿌리깊이 한국 학원엘리트스포츠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위자가 어떻게 역할 했는지에 대한 인식을 잊게한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자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체육특기자제도는 스카우트란 관행과 연동해서 생각해야 한다. 학생선수의 학교 입학은 정해진 입학 전형에 따라야 한다. 특히 대학은 그렇다. 그런데 스카우트는 사전에 상급 학교의 지도자 또는 대학이 하급 학교의 지도자 또는 학부모와 사전 접촉해 입학 전형과 상관없이 선수의 진학을 약속하는 관행이다. 스카우트는 각 학교 간 경쟁의 산물이지 국가주의스포츠나 10월 유신, 박정희와는 관련이 없다. 이 관행은 일제시대부터 있어왔고 (요즘은 일제시대 신문도 쉽게 검색 가능하다.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 50년대에는 학교 간 경쟁이 너무 치열해 선생들도 합세하여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60년대에는 선수를 납치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체육특기자제도는 이 관행을 공식적인 입학전형 체계 속에 제도화한 것이다. 


둘째, 비공식적(학생도 아닌 자를 학생 이름만 붙여서 학교 대표로 뛰게하는 방식)이든 공식적이든(입학전형의 절차를 거치지만 사전 약속 담합으로 입학을 약속 받는 방식), 체육특기자제도는 국가의 입시제도와 무관할 수 없다. 해방 이후에는 각급 학교의 선수 스카우트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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