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영덕에게 들었던 '젊은 김영덕'의 이야기

최민규
최민규 인증된 계정 ·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이다"
2023/01/24
지난해 5월 김영덕 초대 OB 베어스 감독에게 연락을 할 일이 있었다. 
   
휴대전화를 받은 이는 김 감독이 아닌 가족 중 한 분이었다. “감독님이 몸이 좋지 않아 통화가 어렵다”고 했다. 김 전 감독과 1982년 OB 베어스의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이끈 박철순 전 OB 투수코치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침통한 목소리로 “매우 좋지 않으시다”고 전했다. 
   
김 전 감독은 2023년 설날 하루 전인 1월 21일 향년 87세로 작고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 11시즌 동안 역대 최고 승률인 0.596(3시즌 이상 기준)을 남겼다. 선수로는 1960년대 실업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였다. 1964년 255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32를 기록했다. 퍼펙트게임 한 차례, 노히트노런 세 차례에, 54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도 갖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쳤던 그는 1960년대 한국야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됐던 재일동포 영입의 대표 격이었다.
사진=두산 베어스
고인으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오랫동안 들었던 때는 2007년 3월 주간지 <SPORTS2.0> 인터뷰에서였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명성에 다소 가려진 투수 김영덕, 젊은 김영덕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였다. 추모의 의미에서 이를 다시 옮긴다.   
   
가족은 언제 일본에 뿌리를 내렸나.
   
부모님은 경상남도 합천이 고향이신 분들이었지. 아버지가 스물 한 살, 어머니가 열 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갔지. 아시는 분 주선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민이었던 셈이지. 아버지는 처음에 야마구치현 우베 탄광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광부들 상대로 밥장사를 하면서 6남매를 키웠어. 부모님이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다니셨는데, 그래서 형제들 출생지가 제각각이야. 맏이 형은 야마구치현, 나는 교토, 손아래 동생은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지. 1936년 1월 27일 태어났으니 올해 일흔 하나지.
   
‘나는 일본인이 ...
최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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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학회 이사. 주간지 <스포츠2.0>과 스포츠신문 <굿데이>, <일간스포츠> 등에서 주로 야구, 잠깐 정치 취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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