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 테니스장의 소멸

한승백
한승백 · sbhan.net
2023/10/10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평민을 대표하는 제 3신분의 국민의회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테니스 코트 건물에 모여 프랑스에 새로운 헌법이 생길 때까지 연대하고 저항할 것을 약속했다. 테니스코트의 서약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었고, 테니스장은 근대 민주주의가 촉발된 장소였다. 그러나 오늘날 테니스장에 대한 장소성으로 민주주의 혹은 자유, 평등, 박애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르디외는 그의 저작 구별짓기에서 테니스가 클럽과 같은 사적인 전용장소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시간에 정해진 파트너와 비교적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스포츠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복장, 매너,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정신과 같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측면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테니스를 전형적인 상류계급 또는 지배적 취향의 스포츠로 분류하였다(Bourdieu, 1979). 그의 기준에 따르면 테니스장은 특정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정보를 교환하고 사교를 즐기는 폐쇄적인 장소이다. 그곳은 은폐된 입장권이 필요한 계급적 아비투스의 공간인 것이다.

70~80년대 한국의 테니스장도 상류사회의 공간적 특성을 나타내었다.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테니스장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은 제한적이고 특별한 지위의 사람들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테니스라켓 하나들고 공항에 가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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