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20

@정도원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이 절대 악과 절대 선처럼 그려졌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왜 아쉽게  느끼시는지도 알겠고요. 그런데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라는 데 중점을 두고 보면 또 감독이 왜 그렇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손익분기점, 영화에 걸려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영화의 히트유무가 앞으로 한국영화 제작 양상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나오는 영화들이 모두 뚜렷한 선악구도와 다소 단순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는 현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작품 자체의 복합성 혹은 예술성에서는 아쉽지만, 사회에 미친 영향 혹은 효과 면에서 <서울의 봄>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무심히 지나가버렸던 역사적 현상을 새롭게 돌아보고 인식하게 만들어줬다는 면에서요. 특히 젊은 세대가 그 시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 사회 내부에 묻는 두번째 말씀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전두환이 등장해서 정권을 가로채고, 자의로 임기를 정해 끝까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 풍요롭게 천수를 누리다 간 것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책임이 있지요. 인물이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회가 인물을 배태하기도 하니까요. 

전두환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 할아버지였고, 가까운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벗이었습니다. 반면에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진정한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죠.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인물을 서슴없이 타자화하고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매우 양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전두환은 허겁지겁 근대를 받아들여야했던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복지나 윤리를 정립하지못한 채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고, 한 인간이 태어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모두 가족들이 각개 단위로 획득하고 누리도록 만든 데서 생겨난 인간상이 비틀어져 극단화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해당되지 않은다면 괜찮다, 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2023년 현재에도 크게 낯설지 않지요. '가족'과 '국가' 사이에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 중간 단위의 결사체(지역 공동체, 종교 공동체, 취미 공동체 등등...)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19

@popo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1. 전두환의 가장 큰 공은 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미 대사를 통해 레이건의 친서를 건네받고 군 동원 결정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직선제를 수용하는데요. 저는 이것이 전두환 특유의 '특별한 가벼움'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나 직선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한 선택이 아니라,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살상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에서 아, 군대를 동원해봤자 안되겠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수용한 것이지요. 전두환 특유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성향 덕에, 킬링필드와 같은 살육전이 벌어지지 않고 대한민국이 민주화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요약하자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민주화 국면에 접어들도록 공헌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임기를 채우며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기정사실화되어버렸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이 100여년에 걸쳐서 길게 망해가고, 그 이후 식민통치와 분단, 전쟁, 쿠데타 등의 변란을 거치면서, 한반도 주민들은 '근대화'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들(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양 뼈대로 요약될 수 있는)을 변칙적으로 허겁지겁 받아안아야 했지요. 전두환의 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근대화'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닐까요. 전두환 체제가 기정사실화되어갈 수록 근대화 루트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전두환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근대화해야 한다는 절실성, 즉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 당위를 실현하는 매개물인 '전두환'이라는 불법적 지도자의 윤리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던 것이지요.

3.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지 않을까요. 광주 시민이라 해서 모두 같은 입장과 시선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소수라 해도 그런 분들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것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근대화'에 대한 열망, 혹은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지위 혹은 성장 환경 같은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좋은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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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이순자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여성작가의 힘이 보였다고 할까요? 논픽션 후속도 쓰실 계획이 있으신지 알려주세요

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18

@QOQO98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수감 생활 중이던 전두환이 손녀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네가 태어나기 전 용감하고 정의로운 일을 했단다.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네 생일도 축하해줄 수 없는 곳에 와 있다...잘 모르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리며 화내거나 싸우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는 나라가 어려울 때 최선을 다해 훌륭한 대통령이었고 어린이를 몹시 사랑한 대통령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다오" 이런 내용이었죠. 이 내용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이런 편지를 손녀에게 보내는 이의 정신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윤정 ·
2023/12/18

안녕하세요. 지금은 어떤 책을  집필하고 계신지요? 소설과 에세이, 논픽션까지 여러 작업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요. 작업마다 글쓰는 특성이 다를 것 같아서요. 각각의 분야를 넘나들며 쓸 때(작업이 다 다를 것 같아서요)의 어려움과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쓰고 계신 원고 말고도 최근에 어떤 인물이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이후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글쓰기 루틴도 궁금합니다.  

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20

@노영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말씀주신 대로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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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0

전두환은 전남 광주시 부근 담양군에 공수부대를 강원도 화천에서 이전히여 주둔시켰습니다. 주둔 명분이 없는데도  이어지는 여러 정부(문민정부 포함)에서 원상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지날날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공수부대 존치였습니다. 광주 인근 담양의 공수부대는 상징적으로라도 해체하고 타 부대에 분산 수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19

@리사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후세에 길이 남을 좋은 책'이라니, 아, 작가에게 이보다 더 용기를 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전두환에게 대한민국은 그저 자기 야망을 실현하는 시공간이었겠지요. 자기 인생에 어떻게 이롭게 이용할 수 있을지, 대단히 기능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기회의 땅'을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화나는 건 끝까지 무릎 꿇지 않았다는 점이었지요. 특히 '광주는 하나의 폭동이야' 운운하는 영상을 볼 때는 숨이 턱 막혔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후과이지요.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정아은 인증된 계정 ·
2023/12/19

@코코민주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순자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너무 기쁩니다! 안 그래도 현대사 여성인물 중 하나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논픽션으로 도전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구상 단계이고요. 이것저것 써보고 싶은 게 많아서(그런 게 마음 속에 몇 십 개쯤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무엇인들 다 못쓰겠어요~~~^^)아직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덤벼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현대사 속 여성에 대해서 꼭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사 ·
2023/12/18

작가님, 안녕하세요 ^^ 후세에 길이 남을 좋은 책을 발간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하였는데 제2의 전두환이 나오지 않게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뼈아픈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두환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말로 궁금합니다.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보았으면 마지막까지 반성과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가 버릴까요? 작가님을 가장 화나게 했던 전두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작가님의 노고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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