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소설, 에세이, 논픽션 작가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다.
[고전에 무릎 꿇다 7] ‘신의 딸’에게 사랑받았던 남자의 일생 - 『장성택의 길』
[고전에 무릎 꿇다 7] ‘신의 딸’에게 사랑받았던 남자의 일생 - 『장성택의 길』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던 20대의 일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휩싸여 지내던 어느 날, 이런 질문이 날아왔다. “넌 노스 코리아에서 왔니?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니?” 들어본 적이 없던 질문에 당황했던 나는 “여기에 온 거 보면 모르겠어? 당연히 사우스에서 왔지!” 라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치기어린 자존심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북한에서 온 걸로 보인다고? 국민들이 굶든 말든 제 영달만 추구하는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온 걸로 보인다고?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던, 철없고 편협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뒤로도 자주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노스 코리아 사람들하고 만나본 적이 있느냐? 노스 코리아에 가본 적이 있느냐? 혹시 그곳에 남아 있는 친인척이 있느냐?” 호기심으로 점철된 질문들에 응수하면서 나는 알았다. 내부에 있는 이들은 북한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외부인들은 ‘한국인’을...
[고전에 무릎 꿇다 6]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마르크스 입문서 -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고전에 무릎 꿇다 6]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마르크스 입문서 -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고등학생일 때 마르크스를 처음 접했다. 저작을 읽거나 사상을 공부했던 건 아니고, 참가했던 모임의 학생들이 『공산당 선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한구석에서 들은 것에 불과했다. ‘운동권’이라 할 수 있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에 깍두기처럼 참여하다 말다 했던 건 진지한 얼굴로 혁명을 논하는 학생들이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었기에, ‘이제부턴 진심으로 혁명을 믿고, 민중봉기의 도래를 믿고, 나를 투신해야지!’ 결심하고 참가했지만, 막상 모임에 가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기 일쑤였다. 전위가 어떻고 레닌이 어떻고 하는 말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려서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입학과 동시에 ‘미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해방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포화에 휩싸였고,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시위 같은 데 따라다니며 최루탄 연기를 마셨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운동권에 편입...
[고전에 무릎 꿇다 5] 최애소설입니다 - 『오만과 편견』
[고전에 무릎 꿇다 4]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고전에 무릎 꿇다 4]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처음 읽던 십대 때는 온통 레트 버틀러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남자가! 잘 생기고, 능력 있고, 시대 상황을 꿰뚫는 지성에, 섬세한 감성까지. 이성에 대해 한창 관심이 일던 때, 현실 속 또래 남자애들이 모두 여드름 송송 난 철딱서니로 보이던 때, 레트 버틀러는 십대 소녀의 허황된 환상과 허영심을 원 없이 채워주었다. 주인공인 스칼렛이나 멜라니, 애쉴리는 레트를 빛나게 해주기 위한 조연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스칼렛 오하라라는 인물은 터무니없는 바보로 여겨졌다. 자기가 누굴 사랑하는지 그렇게 오랫동안 모를 수가 있나?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가 억지스런 캐릭터를 설정했구먼!
작품을 두 번째 읽던 이십 대 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대학을 마치고 막 사회에 나가 ‘다소곳하면서도 섹시하고, 조신하면서도 애교가 넘쳐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받던 때였다. 어디에서나 환대 받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시 ...
[고전에 무릎 꿇다 3] 거대한 이야기 창고를 여는 문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고전에 무릎 꿇다 3] 거대한 이야기 창고를 여는 문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사람들을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 창고로 끌어들이는 인물들이 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같은 이들이다. 국내 인물로는 장희빈, 사도세자, 소현세자를 들 수 있겠다.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소재가 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변신’이다. 이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커다란 변화를 맞았고, 그 변화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고귀했던 신분에서 죄인 혹은 천민으로 추락하는 운명을 맞았던 이들은 역사에 뚜렷한 족적과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통해 죽은 자들과 교감하고, 사고의 시공간을 넓히며, 축적된 지혜의 보고를 받아 안는다.
내게 역사라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우주로 들어가도록 관문 역할을 해준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이 인물과 처음 마주친 것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읽어도 되는’ 책의 종류가 갑자기 확 늘어났던 시기, 홍수처럼 읽을 거리들이 밀려들었고, 나는 그 중 ...
[고전에 무릎 꿇다 2] 소설가들은 대체 왜? - 『안나 카레니나』
[고전에 무릎 꿇다 1] 왜 그렇게 제 마음대로 살 수 있었는지 - 『궁정사회』
[고전에 무릎 꿇다 1] 왜 그렇게 제 마음대로 살 수 있었는지 - 『궁정사회』
내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지시 받지 않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돈도 많았으면 좋겠다. 음식점의 메뉴판을 보거나 옷가게에서 옷을 고를 때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내 구미와 취향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갈망이 들 때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재벌기업 회장, 고액 연봉자, 광고 한번 찍으면 몇 억의 수입을 올린다는 유명 연예인. 세상만물을 창조했다는 신이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왕조시대의 왕들같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존재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들을 떠올리며 부러워하는 이유는 하나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제 의지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생각만 해도 저릿하지 않은가. 모든 걸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니!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궁정사회』를 집어들었던 이유는 그런 사람들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루이 14세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권력자 중의 권력자,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일인자보다도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다 간...
소설가는 왜 전두환 책을 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