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소년체전과 스포츠혁신위원회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선수

한승백
한승백 · sbhan.net
2023/10/10

2019년 7월 5일 작성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1일
올 초 스포츠계 미투 운동을 계기로 결성된 스포츠 혁신위가 제일 처음 언급한 건 국가주의 스포츠의 포기와 소년체전 폐지 개편이었다. 현상은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었는데 국가주의 스포츠 포기와 소년체전 폐지라니 이해가 가나? 소년체전에 출전하는 선수가 전국체전에 출전하고, 전국체전에 출전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국위 선양을 하고, 그런 시스템이 지금과 같은 성폭력 사태의 구조로 작동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이 같은 혁신위의 행보를 2000년 장희진 파동으로 형성된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위에서 얘기한 도식이 이해가 가니까. 소년체전이니, 인권이니 이런저런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공부하는 학생선수의 변형 담론들이며 기본 기조는 이번 혁신위 권고안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을 정치적 도구로 삼은 학교체육 전문가 집단이 오늘날 한국 스포츠 전체의 개혁 중심 세력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에 기반한 담론 투쟁에서 승리한 결과 아니겠나.
그렇다면 혁신위는 왜 제일 먼저 소년체전을 들고 나왔을까. 그들에 따르면 소년체전은 72년 정부가 앞장서서 ‘스포츠 엘리트 육성’을 위해 기획한 국가주의 스포츠의 산물이다. 정말 그럴까. 이 얘기에 앞서 먼저 전국체전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박정희 시절 전국체전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졌고, 개최지의 임명직 시도지사는 성대한 전국체전 개최 여부에 따라 출세의 명운이 가늠되었다. 동원된 학생들은 화려한 카드 섹션과 매스게임을 통해 박정희의 초상을 전시해 우상화했고, ‘수출 100억 불 달성’과 같은 정권의 성취 또한 반복적으로 찬양되었다. 열기를 더하기 위해 대규모의 선수단이 동원된 건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종목들이 변...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70
팔로워 6
팔로잉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