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심한 두통을 앓았다.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수업도, 선생님도, 친구도, 동아리도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으면 뭘 해야할지 몰라서 수상하고 어색하게 강의동 주변을 서성였다. 그때 처음 느꼈다. 지난 19년, 나는 하고 싶어서 해본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알면 아연실색할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중고생의 내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건 불행이었다. 게다가 난 국문과였다. 국문학도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으면서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진다. 먹고 사는 일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앞으로 뭘 먹을지부터 무슨 생각을 할지 하나하나를 알아서 선택해야 함을 어렴풋이 느껴갈 때쯤, 이끌리듯 교내방송국 부스에 지원서를 내밀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본 생경한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