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미 급한 미국인에 대하여 .6.25를 겪은 세대가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는 임진왜란 후 조선 사람들이 두고두고 섬겼던 ‘재조지은’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기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6.25는 북한의 일방적인 ‘국토 완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북한은 스탈리의 승인 하에 치밀한 전쟁 준비를 해 온데다 소련의 기갑 전력과 완전무장한 조선족 사단까지 받아들인 상황이었고, 남한 군대는 그렇지 못했다. 낙동강 원진을 구성했더라도 한국군으로서는 인민군의 파상공세를 막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름을 잇게 만들어준 것은 역시 미군의 지원이었다. 흔히 우리는 그 최대 공로자로 맥아더 원수를 꼽지만 더하여 한 명의 이름을 빼놓기 어렵다. 월턴 해리스 워커 중장 (1889~1950) .
따로이 관상에 식견이 없더라도, 인상만 보고도 파악되는 사람이 있다. 워커 중장은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의 생전 사진을 보면 딱 불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