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에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썼었다.
그 시절, 어느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던 단편 하나가 판권이 팔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때 연락을 해온 감독에게 나는 직접 각색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감독은 껄껄 웃으면서 내게 걱정할 것 없다며 방송이나 잘 보라는 말만 했다.
아니, 각색을 하고 싶다는데 걱정할 게 없다니, 이 무슨 대화가 이렇단 말인가.
전화를 끊은 그 순간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시사회에 초대받아 갔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견디기 힘들었다(고개를 들 수 없었다가 더 어울리는 표현이지만, 그렇게 쓰면 드라마를 안 봤다는 오해를 살 수도). 누가 저런 형편없는 원작을 썼지 하고 관객들이 두리번거리며 원작자인 날 찾을 것만 같았다. 감독이 드라마를 틀기 전에 각색자인 드라마 작가는 소개하면서도 원작자인 나를 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