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갖는 자, 구보 -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특정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그저 본다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행동이다. 버스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창밖을 ‘보는’ 사람에겐 창밖의 대상들이 기억나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시선을 갖고 풍경을 보는 사람에게 풍경은 의미화되고, 이해될 수 있는 무언가로 변모한다. 소설 속 구보는 시선을 갖는 자이다.
그는 관찰하는 자의 시선으로 도시를 배회하며 자신이 본 사람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며 공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관찰당하는 대상으로서 타자의 시선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재밌는 지점은 구보가 타인을 관찰할 때와 관찰당할 때의 태도나 위치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그는 관찰하는 자의 입장에선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재단하거나 동일시하는 등 평가자라는 우월한 위치에 서지만, 평가당하는 입장이라고 판단되었을 때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룸펜의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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