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도 분노도 삶의 강렬한 인상도 앞선 창작에서 모두 소모시킨 작곡가가 쓴 새 EP앨범 속의 기술적인 곡들처럼 내 생활도 그랬다. 관성과 습관에 의해 지배받는 삶. 같은 교차로에서 같은 시간 같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그러다 생애를 내내 함께 하고 싶은 사랑을 만났고, 다니던 직장에서 잘렸다.
"소정씨 언젠가 분명 나한테 고마워할 걸?"
사직을 권고하던 대표는 면담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가스라이팅에 쉽사리 당하진 않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되돌아보게 되기는 한다. 그 직장에서 잘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무엇에 괴로워하고, 무엇에 즐거워하고 있을까.
쉬면서도 역시 나는 하고 싶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가까운 지인에게 시민단체 구인공고를 하나 전달받았다. 동물 보호소 안의 동물병원 테크니션 직무. 생소한 일이었으나 이런 일에 나도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다는 걸 알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