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년쯤 전에 고등학생이었다. 유달리 보수적인 내 고향은 학생인권조례의 혜택이 닿지 않는 한국 사회의 주변부였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체벌이 일상적이었고, 끔찍한 두발규정과 이 규정을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계셨다(원어민 선생님은 그를 'stupid hair police'라고 불렀다). 그곳은 학교라기보다는 병영에 가까운 곳이었고, 학생들이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는 기껏해야 댄스동아리 정도였는데, 대부분의 재능 없는 학생들에게는 그마저도 먼 나라 얘기였다. 오로지 공부, 정확히 말하면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만이 학교를 지배하는 절대 원리였는데, 당연히 야간자율학습은 자율적이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은 9시까지, 2학년은 10시까지, 3학년은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특별한 사유를 소명하지 않으면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학원 수업이 있는 경우, 학원 수업 수강을 증빙하여야 했다. 아프다는 이유로 야간자율학습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