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 판단 하에 하교하겠습니다.
대략 10년쯤 전에 고등학생이었다. 유달리 보수적인 내 고향은 학생인권조례의 혜택이 닿지 않는 한국 사회의 주변부였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체벌이 일상적이었고, 끔찍한 두발규정과 이 규정을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계셨다(원어민 선생님은 그를 'stupid hair police'라고 불렀다). 그곳은 학교라기보다는 병영에 가까운 곳이었고, 학생들이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는 기껏해야 댄스동아리 정도였는데, 대부분의 재능 없는 학생들에게는 그마저도 먼 나라 얘기였다. 오로지 공부, 정확히 말하면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만이 학교를 지배하는 절대 원리였는데, 당연히 야간자율학습은 자율적이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은 9시까지, 2학년은 10시까지, 3학년은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특별한 사유를 소명하지 않으면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학원 수업이 있는 경우, 학원 수업 수강을 증빙하여야 했다. 아프다는 이유로 야간자율학습을 하루 빠지는 것조차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요'라는 이유로 야간자율학습에 빠지기는, 담임선생님과 굉장히 신뢰관계를 쌓지 않는 한 어려웠다(그리고 주로 신뢰는 성적에 비례했다). 정규수업시간이 끝나는 오후 4시에 집으로 돌아갔던 날은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나 특별한 기념일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무렵에는 비자율적인 야간자율학습에 대해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반드시 서울대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의욕적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9시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언젠가 이유 없이 우울하고 답답하고 공부하기 싫은 날이 있었다. 책도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9시가 되기 전에 집에 갈 수는 없었다. 꼼짝 없이 학교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공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 외의 다른 것을 할 수도 없었...
굉장히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굉장히 공감가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