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준비가 안 된 여행은 처음이었다. 1박으로 가는 국내 여행을 떠날 때도 모든 일정과 교통 티켓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출력까지(기차 앱이 있는데도 굳이 출력해오는 나를 보며 경악한 친구의 표정이 떠오른다) 하고, 준비물 체크리스트도 출력해서 항목마다 체크하고도 모자라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의욕이 일지 않았다. 이미 3년이나 늦어버린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3년 전 찰스 디킨스의 평전 겸 그가 살았거나 즐겨 찾았던 곳들을 둘러보는 기행문 형식의 책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하고 여행을 준비했을 때는 정말이지 설렜다. 출판사에서 취재비와 여행 경비를 두둑하게 받았겠다. 찰스 디킨스가 쓴 거의 모든 소설을 읽고, 그의 전기는 세 번이나 읽었다. 이제 짐을 꾸려서 런던으로 출발만 하면 끝내주는 취재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비행기표를 예약하려던 즈음 코로나가 시작됐고, 이어서 전 세계가 요란하게 문을 닫는 것도 모자라 빗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