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통신 1-드디어 출발!

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8/06

   
이토록 준비가 안 된 여행은 처음이었다. 1박으로 가는 국내 여행을 떠날 때도 모든 일정과 교통 티켓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출력까지(기차 앱이 있는데도 굳이 출력해오는 나를 보며 경악한 친구의 표정이 떠오른다) 하고, 준비물 체크리스트도 출력해서 항목마다 체크하고도 모자라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의욕이 일지 않았다. 이미 3년이나 늦어버린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3년 전 찰스 디킨스의 평전 겸 그가 살았거나 즐겨 찾았던 곳들을 둘러보는 기행문 형식의 책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하고 여행을 준비했을 때는 정말이지 설렜다. 출판사에서 취재비와 여행 경비를 두둑하게 받았겠다. 찰스 디킨스가 쓴 거의 모든 소설을 읽고, 그의 전기는 세 번이나 읽었다. 이제 짐을 꾸려서 런던으로 출발만 하면 끝내주는 취재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비행기표를 예약하려던 즈음 코로나가 시작됐고, 이어서 전 세계가 요란하게 문을 닫는 것도 모자라 빗장을 질러 버렸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책장마다 밑줄을 치면서 읽고 공부한 자료들과 책의 내용은 까먹었고, 취재비는 오래전에 다 써버렸고, 체력도, 의욕도 예전만 못했다. 코로나로 3년간 여행을 하지 못해서 이제는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설사 그곳이 10년 전에 1년 반 가까이 살았던 영국이라 해도. 10년 전에도 죽을 맛이었던 런던 물가가 이제는 정말 사람 잡을 수준으로 올라버린 것도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챙기고, 이미 초가을 날씨라는 런던행에 대비해 긴팔 옷가지 몇 개를 챙기고, 오래전 읽었던 디킨스 소설 몇 권과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트렁크에 넣었다. 어쩐지 이 책이 근 10년 만에 다시 가는 히드로 공항과 썩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본인 사진


여행을 떠나면서 다짐했다. 가기로 한 이상 더는 두려워 말고 세상을 향해...
박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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