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역습
지금 많은 한국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가난해지는 중이다. 올해 들어 물가가 빠르게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이 우리와 비슷한 처지다. 게다가 문제는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다. 이 두 가지가 현재 인플레이션 폭등을 견인하고 있다. 제일 많이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종 업데이트
2022/08/23
인플레이션
한 나라 경제에서 전반적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려면 먼저 ‘전반적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소비자물가지수
실제 그 많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전반적으로 측정할 땐 무수히 많은 가격을 뭉뚱그린 뒤 통계기법을 사용해 하나의 가격으로 합친다. 이걸 소비자물가지수라고 부른다. 코스피 지수가 코스피에 상장된 수많은 회사의 주가를 하나로 합쳐서 만든 것과 같은 의미다. 물가상승률이 10%라고 할 땐, 이 소비자물가지수가 10% 올랐단 얘기다. 비유하자면 소비자물가지수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평균적인 생활비에 가까운 개념. 물가가 1년 동안 10% 올랐다면 국민들의 평균 생활비가 10% 올랐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숫자로 보는 인플레이션: 4~5%
인플레이션을 측정할 땐 물가가 오르는 속도, 즉 상승률을 기준으로 한다. 많은 선진국 정부는 연간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한다. 인플레이션을 정의할 땐 그보단 기준이 높다. 한국은행의 경우 “통상 연 4~5% 정도의 물가상승률이 관측되면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가장 최근의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6%(2022년 6월 기준)다. 위 기준에 따르면 2022년 7월 현재 한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왜 무서운가
물가가 오르면 예전에 같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던 물건을 살 수 없게 된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단 뜻이다. 그래서 경제학에선 인플레이션을 화폐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가만히 있어도 내 소득과 재산이 줄어들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면 그 나라 국민들은 빠르게 가난해진다.
인플레이션의 속도: 72의 법칙
- 물가가 2배가 되는 기간=72/물가상승률
예를 들어 지금 페이스대로 소비자물가가 매년 6%씩 오른다고 해보면 정확히 12년 뒤에 물가가 2배로 오른다. 8%씩 오른다면 9년 뒤다. 연간 5~6% 상승을 방심해선 안 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이유
“돈은 너무 많고 상품과 서비스는 너무 적을 때 일어난다.”
전자를 수요, 후자를 공급 측면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은 경제 내의 수요가 너무 많거나 공급이 너무 적을 때, 그리고 둘 다 겹칠 때 일어난다.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간략한 역사 : 한국 물가상승률
올해 63세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월 13일 기자회견에서 “20~30대 젊은 세대는 경제생활을 시작한 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했다"며 “저희 세대는 1970년대를 살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추이를 놓고 보면 한은 총재가 왜 그런 느닷없는 ‘라떼 토크'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1960~1980년대 : 물가상승률이 보통 10%를 넘었다. 20~30%를 오가는 일도 흔했다.
1990년대 : 1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 말 이후 이런 일은 사라졌다.
2010년대 이후 : 물가상승률이 5%를 넘은 적이 없다. 물가상승률이 고작(?) 6%를 찍었는데 경제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인 배경에는 오랜 기간 인플레이션이 잠잠했던 탓도 있다.
중요한 질문: 정부는 뭘로 인플레이션을 잡는가
‘기준금리’다.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기준금리를 정한다. 이 금리는 다른 모든 금리의 기준이 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예금 및 대출금리도 따라서 오르기 마련이다.
한은은 물가가 오르면 대개 기준금리를 올린다. 금리가 오르면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 가계는 대출금리가 올라 소비를 줄이거나 예금금리가 오르니 저축을 늘인다. 기업도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대출금리가 오르니 투자를 줄인다. 다른 말로 하면 수요가 줄어들고, 그래서 가격이 떨어진다.
더 중요한 질문: 금리 얼마나 올려야 물가가 잡힐까
금리 인상은 고통을 동반한다. 소비와 투자가 줄면 일자리가 줄고 소득도 줄어든다. 이창용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1%p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0.2%p 하락하는 걸로 추산된다”고 언급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금리를 1%p 올리면 4조 원 가량이 사라진단 뜻. 결국 물가가 적정 수준으로 내려올 때까지만 금리를 올릴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 올려야 물가가 잡힐지 미리 알긴 어렵다. 과거 데이터로 추측할 수 있을 따름. 중요한 건 실질 기준금리, 즉 기준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수치다. 물가상승률과 거의 완벽하게 대칭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전 추이를 보면 긴축 국면에서 인플레이션을 2~3%대에서 안정시킬 땐 실질 기준금리도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야 했다. 현재 실질기준금리는 마이너스 3~4%대로 역대급으로 낮은 수준. 실질 기준금리만 놓고 보면 3%p 이상 금리를 높여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가능한 셈이다.
심화학습
경제 전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중요하지만, 개인 상황에 맞는 물가상승률도 중요하다. 통계청은 가구주 연령, 가구원수, 18세 이하 가구원수, 가구의 월평균 소득, 거주 지역에 따라 ‘우리 집 물가상승률'을 계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분기 별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발간한다. 물가를 중심으로 우리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물가상승률 전망과 그에 따른 통화정책 운용 상황 등 풍부한 정보가 담겨있다. 분량이 방대하니 궁금한 부분만 발췌해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권승준 alookso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