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프랑스를 외면하고 독일편을 들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5/19
  •  알랭 가리구·장폴 기샤르 l 명예교수



베르사유 조약 100주년의 회고

베르사유 조약은 세계질서를 개편해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짓고자, 1919년 6월 28일에 체결된 조약이다. 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패전국 독일의 배상을 다룬 베르사유 조약은 훗날 나치즘의 부상에 일조했다. 한편 조약의 구체적인 구상 과정은 종종 등한시되는데,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비롯한 일부 핵심 인물의 역할이 특히 그렇다.
 
<병든 평화>, 1936 - 장 르 모알

2019년에 이르러 우리는 이 조약의 백 주년을 기념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지적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베르사유 조약 전문은 전쟁의 종결이 불러일으킨 희망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패자들에게는 불공정한 조약이라고 비난받았고, 승자들 사이에서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세간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이 국제질서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독일에 너무 가혹한 처사를 강요함으로써 나치즘이 부상하는 데 일조했고, 그리하여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됐다”고 말이다. 심지어 일부 역사학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은 2차 대전이 유일했다고 주장할 정도다. 그렇게 비난받은 이후, 베르사유 조약이 이룩한 평화는 잊히고 말았다. 
1919년 6월, 바이마르 공화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베르사유 조약의 조인을 결심해야 했다. 조인은 하되 그것을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이 말이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231 조항, 즉 ‘전쟁에 관한 유죄조항’을 경제적이며 정신적인 이중 형벌이라고 봤다. 이 조항은 전쟁의 책임이 온전히 독일에 있음을 명시한 만큼,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당위성의 근거가 됐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오늘날까지도 반복 인용되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1919년 출간)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좌절된 평화’라는 개념을 통해 독일의 입장을 지지했다.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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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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