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비하인드 남북투쟁사1 - 테헤란의 혈전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9/27
오늘은 추석 명절 앞둔 날이자 '축구하는 날'이다. 키르키스탄과 16강전.  어렵지 않게 이길 것 같지만 문득 아시안 게임의 역사, 그 중에서도 한때 사생결단 같은 혈투를 치렀던 아시안 게임의 남북 대결의 역사를 한 번 돌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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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일본에 머물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해 온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외교적 폭거였고 박정희 정권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한다. 곤란하게 된 건 한국 정부만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민족차별에 시달리고 살던 재일교포들은 이 어이없는 한국 정부의 만행 때문에 졸지에 ‘야만국 백성’의 오명을 덧써야 했다. 원래 조총련에 맞선 우익쪽 재일교포 단체인 거류민단 소속이었던 문세광이라는 이름의 재일교포 청년은 김대중 납치 사건을 계기로 격렬한 반한(反韓)으로 변신했고 끝내는 일본의 파출소에서 훔친 권총을 들고 한국에 들어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다. 대통령을 향한 총알은 빗나갔으나 그가 쏘아붙인 총알에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절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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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 스포츠 대결의 역사를 얘기하는데 왜 난데없는 문세광 사건이 나오느냐 의아해 하실 수도 있겠다. 당시 남한 스포츠계는 뮌헨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동계 제외) 대결에서 북한에 참패한 이후 절치부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참가한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은 그때껏 남한이 만져보지 못한 금메달을 따내고 배구 3,4위 전에서 한국을 3대0으로 셧아웃시키는 등 남한을 압도한 바 있다. 

 6.25 당시의 적수 중공 (당시는 이렇게 불렀다)과 북한이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은 다시금 북한과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숙명의 외나무다리였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북괴를 타도’한다는 지상과제가 떨어져 있었고 그 즈음 문을 열었던 태릉 선수촌에서는 매일 모든 선수들이 새벽 6시에 집결해 체조를 하고 “이기자!” 악을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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