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진의 방] 6. 세계의 충돌, 리키도잔 : 루 테즈

의현씨
의현씨 · 종암동에 살고 있는 1991년생 인간
2024/04/22
역도산, 그러니까 리키도잔에 대해 후대의 평가는 다소 많이 엇갈립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역사가들이 모두 인정하는 것이 "역도산은 당시 세계 프로레슬링 역사에 센세이셔널한 존재였다" 였다는 것입니다. 왜 였을까요? 이유는 역도산의 1953시즌의 행보입니다. 그리고 이 행보는 전 세계 프로레슬링의 흥행 방식을 바꿔버리는 변곡점이 됩니다.

- 리키도잔이 불러온 "센세이셔널"의 시대
리키도잔이 1953년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 를 만들고 나서, 먼저 한 것은 "TV 방송 중계권"을 따낸 것입니다. 리키도잔이 하와이에서 활동 할 당시에도 미국에서 프로레슬링은 TV로도 방송 경기를 중계했다는 것을 안 후로 그는 "TV를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라는 생각 아래 "일본에서 하는 프로레슬링"을 TV 방송 경기로 바로 할 계획을 들고 당시 일본의 민영 방송국을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당시 공영방송국이었던 NHK 중계를 따낸다면 전국 방송이 되기 때문에 리키도잔 입장에서도 대박이긴 했지만, NHK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GHQ의 제재 법안 등으로 인해 "사단법인에서 특수 법인"으로 바뀌어버리면서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따내기가 다소 제한적이었습니다.
또한 NHK는 오히려 일본의 "국기" 들이었던 스모, 유도, 검도 중계에 조금 더 우선순위가 높았습니다. 즉, 프로레슬링이 여기에 비집어서 하기는 애매했기 때문에, 역도산은 전략적으로 민영방송국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역도산의 요청에 응한 곳이 나왔는데, 그곳이 도쿄 소재의 민영방송국인 닛폰 테레비 주식회사, 즉 "닛테레"였습니다. 닛폰 테레비는 1953년 8월 28일 정식 개국을 하여 (물론 방송국 회사는 1952년 설립되었지만 TV방송 준비 기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다소 사세를 늘릴만한 "컨텐츠" 가 필요했고,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그 "스모선수였던" 리키도잔이 프로레슬링이란 것을 배워 와 일본에 도입하려 한다라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인 컨텐츠로 다가왔던 터라, 개국 후 얼마 안되어 닛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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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협동조합 와보숑 고정 프리랜서, 개인 사무소에서 영상 만들고 글쓰고 디자인 하고 가끔은 유튜브에서 자작곡과 커버곡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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