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의 한국에서 헐리웃 영화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물론 한국 영화도 60년대의 전성기를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가슴을 녹여 주고 가난과 피로를 잊게 해 주었던 것은 홍수처럼 밀려들었던 헐리웃 영화들이었던 것이다. 영화 <애수>를 보면서 전쟁으로 찢어진 연인들의 슬픈 운명에 자신들을 대입시켰고 뒤돌아서 떠나는 총잡이의 뒤에서 “세인! 컴 백!”을 부르짖는 꼬마를 보면서 아련한 감상에 젖었다. 이런 수요를 위하여 뭔가 쌈박한 극장이 필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시장을 지냈던 김형민과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던 밴플리트 전 (前) 미 8군 사령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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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장이었던 김형민은 서울 시민들의 문화 휴식 공간을 위해 극장을 세우고자 했고 밴플리트 중장은 미국의 20세기 폭스를 연결시켜 주었다. 그 결과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기 정화 시설을 가동시켰기에 창문이 하나도 없는, 당시로서는 이색적인 건물이었던 대한극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