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몸살을 앓게 하는 시인, 기형도(奇亨度, 1960~1989)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빈집>
#1.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는 ‘무진’만의 명산물이 아니다. 안양천 방죽의 안개도 그에 못지않다. 소하리(所下里)의 아침은 종종 안개가 자욱하였다. 기형도(奇亨度, 1960~1989)는 집에서 2km 떨어진 서울의 시흥초등학교에 다녔다. 아침 등굣길 천변을 걷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저만치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안개가 그를 커튼처럼 감쌌다.
1960년대 무진의 안개가 김승옥으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하게 바라게” 했다면, 1970년대 소하리의 안개는 기형도에게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진 아버지와 “시집도 못가고 죽은 누이”를 떠올리게 하는 “경멸할만한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