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는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상판의 가로 세로 길이는 물론이요, 등받이, 다리 외 부품들도 모두 이 설계 도면 속에 있다. 모든 사물에는 설계 도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는 글로 만들어진 설계 도면이다. 그렇다면 의자 도면은 의자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떨까 ? 인간도 사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인간이라는 상품은 인간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옛날 옛적에는 인간 설계 도면이 존재했다. 인간은 신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거나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 이후,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인간은 설계 도면 없이 태어난 존재다. 목적이 없으니 태어난 이유도 없다. 그냥, 어른들의 남녀 혼합 심야 레슬링 놀이 때 우연히 세상 밖으로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이것을 철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 피투성(被投性) " 이라고 한다. 한자 피(被)가 이불(포대기)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