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늘 노트를 들고 다녔다. 핸드백을 드는 날에는 손바닥만 한 노트를, 몸집만큼 큰 백팩을 멘 날에는 두껍고 큰 노트를 챙겼다. 여자가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가난한 여자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여자는 노트를 방 대신 사용했다. 은밀한 아지트의 문을 열 듯 노트를 열어 마음속 이야기를 썼다. 처음 사귄 여자애의 손을 잡았을 때, 술 취한 아버지가 처음 손찌검 했을 때, 병든 할머니에게 모진 말을 하고 돌아서서 울 때, 첫 아이를 낳고 퉁퉁 부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살고 싶으면서도 죽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마다 여자는 무작정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휘갈겼다.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은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됐다. 행복할 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행복은 단순하고 명쾌해서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았으니까. 여자는 분노와 슬픔 속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여자의 글은 통증의 일대기다. 아무래도 사는 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