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자란 딱지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야.” 엄마는 교육에 진심이었다. 전기세가 아까워 불을 켜지 않고, 교통비가 아까워 걸어 다닐지언정, 두 딸의 교육과 문화생활에 아끼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 자매는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지원은 끊기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대학 생활을 아르바이트로 낭비하길 바라지 않았다. ‘대학’이라는 경험을 최대한으로 누리며, 돈보다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랐다. “돈이 전부도 아니고.” 엄마는 인천에 있는 한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는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가정 형편 탓에 당장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40년이 훨씬 넘은 지금, 엄마는 그때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갔어야 했다고 말한다. 1958년생 우리 아빠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