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고졸만큼은 되지 말라고 말했다.

연혜원
연혜원 인증된 계정 · 투명가방끈 활동가, 사회학 연구자
2023/01/17
“고졸자란 딱지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야.” 
   
엄마는 교육에 진심이었다. 전기세가 아까워 불을 켜지 않고, 교통비가 아까워 걸어 다닐지언정, 두 딸의 교육과 문화생활에 아끼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 자매는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지원은 끊기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대학 생활을 아르바이트로 낭비하길 바라지 않았다. ‘대학’이라는 경험을 최대한으로 누리며, 돈보다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랐다. 
   
“돈이 전부도 아니고.” 
   
엄마는 인천에 있는 한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는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가정 형편 탓에 당장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40년이 훨씬 넘은 지금, 엄마는 그때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갔어야 했다고 말한다.
   
1958년생 우리 아빠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은 아빠가 공고 교사로 재직 중인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들은 적 있다. 그들이 회상하는 1970년대 공업고등학교는 똑똑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돈을 벌기 위해 진학하는 학교였다. 그 당시 한국은 경공업에 대한 투자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대대적으로 직업계 고등학교를 국가 인력양성소로 홍보했다. 그 말만 믿고 당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던 학생들이 졸업 후 맞이한 현실이란, 대학교 졸업자보다 훨씬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교할 수 없이 낮은 임금이었다.
   
아빠 - 우리나라는 내가 보기에 공고를 옛날에 너무 죽였어. 우리 때만 해도 공고가 괜찮았잖아, 그런대로? 수...
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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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 활동가이자 사회학 연구자. 연구로 <능력주의 사회에서 공업고등학교 학생의 성인이행기 전략>(202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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