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레타에서는 무엇이든 진해진다.
크레타에서는 무엇이든 진해진다. 음식도, 사람도, 심지어는 알코올 도수까지도. 어쩌면 강렬한 태양과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 탓일 수도 있다. 혹은 외세의 오랜 지배와 그 저항이라는 역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본토와도 결이 다르다. 훨씬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이라클리온 골목 어딘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간 적 있다. 우연한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레스토랑이 만석이었기 때문에, 꿩 대신 닭으로 택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먼저 우와- 감탄부터 나왔다. 나무 식탁. 방석은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 털이 숭숭 나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그래서 커다란 마당에 천을 대어 지붕 삼았다. 한쪽 화덕에는 핏빛이 도는 고기가 꼬치에 꽂혀 장작 옆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거기서 이미 동네 사람들이 대낮부터 시끌벅적하게 술판이다. "메뉴판 좀 부탁드려요." 웨이터는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영어 메뉴판을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