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100여 년의 격차를 두고 있는 지금, 거의 신화가 되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안중근이 살던 시대에 일어난 저항 운동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몸으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화로 등재된 안중근은 우리에게 몸이 아닌, 언어로 다가온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이 문장은 안중근의 실존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도 신이 아닌 인간이었으므로, 그가 권총을 꺼내 일곱 발의 탄환을 발사하기까지, 그리고 교수대에 목이 걸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사회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그 불안과 결단과 죽어감의 시간을 저 문장은 무참히 살해한다. 김훈의 『하얼빈』은 민족 영웅이라는 신화에 가려진 안중근의 실존을 복원한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의사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과 만난다.
그렇지만 『하얼빈』은 소설이므로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