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란을 넘어서
유희열 표절 논란에 대한 관심이 식을 기미가 없다. 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가 표절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논박을 벌이며 단죄할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태도로는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 사안이 논란과 스캔들을 넘어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논의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이 초석을 놓기에 적합한 전문가 세 명을 섭외했다.
최종 업데이트
2022/08/17
예술계의 표절은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이슈다. 인기 있는 장르나 아티스트는 큰 관심을 모아 뭇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논란에 그칠 뿐 건설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일방적인 비판과 옹호로 점철된 감정 싸움, 자극적인 마녀사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유희열 표절 논란에 대한 관심이 식을 기미가 없다. 우리는 오늘 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가 표절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논박을 벌이며 단죄할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태도로는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 사안이 논란과 스캔들을 넘어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논의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이 초석을 놓기에 적합한 전문가 세 명을 섭외했다. 두 명은 대중음악 전문가, 한 명은 영화 전문가다.
우리는 이들의 시선을 두고 찬반을 가르거나 우열을 논할 의도가 없다. 그렇게 소모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표절이란 무엇인가’라는 막막한 주제를 보다 섬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배경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1. 담장의 경계에서(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근래의 논란을 보며 음악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괴리를 느끼는 전문가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세대 차이가 핵심 원인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멜로디 중심의 백인 음악 영향이 짙은 과거 음악, 리듬과 사운드 중심의 흑인 음악 영향이 짙은 요즘 음악. 전자에 친숙한 기성세대는 멜로디가 얼마나 일치하느냐를 중시하고 과거 공연윤리위원회가 제시한 ‘8마디 룰’ 때문에 그걸 넘지 않으면 표절이 아니라는 기준까지 은연 중에 품고 있다. 그러나 후자에 친숙한 젊은 세대는 다르다. 멜로디보다는 메인 루프와 리듬이 만들어내는 바이브에 반응한다. 시대의 기준이 ‘음표의 연속성’에서 ‘실질적 유사성’으로 바뀐 것이다. 수용자는 새 기준을 탑재하고 있는데 창작자는 과거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리는 이들의 시선을 두고 찬반을 가르거나 우열을 논할 의도가 없다. 그렇게 소모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표절이란 무엇인가’라는 막막한 주제를 보다 섬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배경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1. 담장의 경계에서(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근래의 논란을 보며 음악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괴리를 느끼는 전문가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세대 차이가 핵심 원인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멜로디 중심의 백인 음악 영향이 짙은 과거 음악, 리듬과 사운드 중심의 흑인 음악 영향이 짙은 요즘 음악. 전자에 친숙한 기성세대는 멜로디가 얼마나 일치하느냐를 중시하고 과거 공연윤리위원회가 제시한 ‘8마디 룰’ 때문에 그걸 넘지 않으면 표절이 아니라는 기준까지 은연 중에 품고 있다. 그러나 후자에 친숙한 젊은 세대는 다르다. 멜로디보다는 메인 루프와 리듬이 만들어내는 바이브에 반응한다. 시대의 기준이 ‘음표의 연속성’에서 ‘실질적 유사성’으로 바뀐 것이다. 수용자는 새 기준을 탑재하고 있는데 창작자는 과거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2. 도덕 이전에 음악부터 논의해야(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유희열 표절 논란은 다분히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표절이 틀림없고 예전부터 죽 그렇게 해온 파렴치한 사기꾼.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가 부당하다고 항변하는 전문가도 있다. 논란이 과도한 ‘도덕쟁탈전’ 양상을 띄고 있다며 이런 사안은 음악적 근거를 중심으로 따지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그는 주장한다. 편집 역시 이 시대 작곡 방식을 관통하는 본질 중 하나이므로 그런 배경과 맥락 아래에서 표절을 재정의하고 기준을 잡아야 한다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표절로 낙인 찍어 집단적으로 매장하는 건 대중의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아울러 유독 예술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데에도 물음을 던진다. 우리 각자의 삶은 정말 유희열의 창작법과 완전히 무관한 것일까?
3. 어떤 아버지들은 사라져야만 한다(김도훈, 영화 평론가)
표절과 레퍼런스의 희미한 경계. 이는 비단 대중음악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영화 평론가인 필자는 논란만 무성했을 뿐 흐지부지 넘어간 한국 영화의 과거 사례를 하나하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다시금 폭로하며 비판하기 위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인정한다. 원래 문화는 보다 발전한 무언가를 참고하고 베끼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우리에겐 일본이 그 자양분이 돼줬다고. 하지만 그 유예기간이 끝났단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는 동안 새로운 세대, 관객, 청자의 기준 역시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그들에게 한국 대중문화는 세계에 레퍼런스를 제공해야 할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세계다. 레퍼런스를 핑계 삼는 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온 대중문화의 많은 아버지들을 부정해야 할 시점이다. 고통스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