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교사 에세이] 교직, 떠나고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가넷
가넷 인증된 계정 · 전 고등학교 교사, 현 프리랜서✒️
2024/04/15



교직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나서부터
내 내면의 상태는 줄곧
'폐허'였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밈이 된
'우리 식당 정상영업' 짤을 아는가?
폐허지만 정상영업합니다. (인터넷 밈이 된 사진)

내 상태가 내내 이랬다.
제 인생, 정상영업합니다. 폐허지만요.

어떻게든 삶을,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꾸역꾸역 정상영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내내 폐허인 채로,
생기를 잃은 채로 버티듯 지냈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이런 상태를
살아있는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지쳐 잠들고 아침이 되면
또 폐허인 채로 하루를 살았다.
깊은 우울증 상태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망가진 정신으로
제대로 쉴 수는 없었고
불안과 우울에 잠식되어
유쾌하고 낙천적인 편이던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
냉소와 절망을 이기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스스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에 더한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 덕분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고마운 연대와 응원.

교직을 떠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와
잊어버렸던 어떤 당연한 진실들.


교직을 떠나고 나니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학교라는 세계는 너무도,
정말 너무도 작은 세계였는데
그 안에서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내게 너무도 크게 부딪혀오고
너무 큰 파장을 만들어
나를 자꾸 마모시켰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바깥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는
그 크고 작은 소용돌이는
세상밖에 나오니
금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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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등학교 교사(~2023. 8.)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2022.12.) 했습니다. 악성민원을 빌미로 한 교육청 감사실의 2차 가해(2023.4.)로 인해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2023.9.1.~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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